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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추방’ 美입양아 “국가도, 삶도 날 버렸다”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필립 클레이(한국이름 김상필)는 8살에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스물아홉 해를 살며 그는 수 차례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마약중독에 시달렸다. 그러다 2012년, 태어난 한국으로 추방됐다.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에겐 양극성 장애와 알콜 및 약물 남용 등 정신질환이 있었지만 적절한 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지난 5월 21일, 그는 서울 북부에 있는 한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나이 마흔둘이었다. 한국에 온 지 5년 만에 클레이의 삶은 끝났다.

미국에 세워진 ‘입양아 현수’ 추모동상. 미국인 양아버지의 폭력으로 입양된 지 넉 달 만에 숨진 ‘비운의 입양아’ 현수를 기리는 동상.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욕타임즈(NYT)의 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시민권을 받지 못해 강제추방 당하는 한국인 입양아가 국제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입양아의 시민권을 보장하는 법이 미비해 추방된 이들은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범죄에 노출되는 등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입양아 권리 캠페인(Adoptee Rights Campaign)’은 클레이처럼 시민권이 없는 성인 입양아를 약 3만5000 명으로 추정한다. 2000년 이전 입양아들은 부모가 시민권을 신청해야만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다. 지난 2000년 입양 아동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아동시민권법이 통과됐지만, 이미 성인이 된 입양아에게 소급적용되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부모는 이 사실을 모르거나, 비용 및 절차를 이유로 시민권 신청을 포기했다.

부모가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 불법체류자가 되고 전과가 쌓이면 강제추방된다. NYT에 따르면, 성인 입양아 일부는 추방 명령을 받기 전까지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모르던 경우도 많다. 83년도에 입양된 클레이 역시 입양 과정에서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입양아 강제추방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추방된 입양아 다수는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생활한다. 범죄에도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추방된 입양아가 장난감 총으로 은행을 털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폭행 혐의로 두 차례 기소된 사례도 있다.

한국 정부 산하 입양기관에서 일하는 헬렌 고는 “강제추방은 그들에게 사형 선고다”며 “그들은 미국에서 힘들게 적응하며 살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그보다 더 힘든 삶을 산다”고 말했다. 고 씨는 “그가 죽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1950년대 이후 미국으로 약 11만 명을 입양보낸 ‘입양아 수출 대국’이다. 이들 중 시민권을 얻지 못해 추방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국가 통계도 없다.

8년 전 단돈 20달러를 쥐고 한국으로 추방됐다는 애덤 크래프서 씨는 “한국은 수 십 년 전 우리가 미국시민으로 자랄 수 있을 거라며 입양보냈다. 그렇다면 미국의 입양아 강제추방에 맞서고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그렇게 하는 대신 ‘한국인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일하기’를 요구한다”며 “그건 불가능”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18세 이전에 입양된 모든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입양아 시민권법(Adoptee Citizenship Act)’ 지원을 논의하기 위해 올해 봄 미국 의회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현재는 입법 논의가 중단됐지만, 입양아 인권 운동가들은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클레이의 사망 후, 한국 정부는 강제추방된 입양아를 위한 더 나은 보호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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