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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생각하는 양성평등] 분홍, 분홍, 분홍…여성전용 공간 “나만 불편해요?”
-임산부 배려석ㆍ우선 주차구역 등 분홍색 표시
-은연 중 남녀 고정관념 조장한다는 지적 일어
-미국 등 해외 방송에서도 논란 거리로 대두
-여성단체 “공공기관부터 고정관념 벗어나야”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서울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신모(26ㆍ여) 씨는 전동차 내 임산부 배려석을 보면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좌석부터 바닥까지 분홍색으로 돼 있는 색깔 때문이다. 신 씨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다른 밝은 색도 많은데 굳이 분홍색으로 둔 이유가 있을까 싶다”며 “남녀노소 하루 500만~600만명이 타는 지하철이 은연 중에 성 고정관념을 심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서울 중구 남산공원을 찾은 안모(37ㆍ여) 씨는 주차장에 있는 분홍색 여성우선 주차구역을 보고 씁쓸함을 느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해도 아직도 여성의 색깔이 ‘자연스레’ 분홍으로 수렴되어서다. 안 씨는 “정책 자체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성 전용구역을 분홍색으로만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공공기관부터 양성평등 인식을 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1~8호선 전동차 안에 있는 임산부 전용석. [사진제공=서울교통공사]

서울에서 여성 배려차원으로 진행되는 ‘여성 전용공간’ 사업 일부가 양성평등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여성 전용이란 이유에 구역 표시선 등을 화사한 분홍색으로만 표시해둔 탓이다. 공공기관부터 여성성에 고정관념을 심고 있다는 비판이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2015년 7월 등받이와 좌석, 바닥까지 모두 분홍색으로 바꾼 지하철 내 임산부 전용석이 대표적이다.

여성들을 위해 더욱 눈에 띄게 만들고자 정한 색깔이나 정작 다수 여성들은 ‘또 분홍색이냐’는 등 미지근한 반응이다. 현재 서울 지하철 1~8호선 전체 3570량에는 1량 당 2곳씩 모두 7140곳 임산부 전용석이 있다.

분홍 경계선에 분홍 치마를 입은 여성 픽토그램도 있는 여성우선 주차구역에 불만을 표시하는 여성도 상당수다. 서울시는 지난 2008년 ‘여행(女幸)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현재 시내 주차공간 중 약 4만~5만면을 여성우선 주차구역으로 지정, 운영 중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일반 구역 주차를 선호한다. 직장인 이모(51ㆍ여) 씨는 “분홍색이 여성의 상징인 시대는 예전에 지나갔다고 본다”며 “분홍선 안에 차를 대면 옛 여성성에 순응하는 느낌이 들어 일부러라도 일반 구역에 주차한다”고 했다.

[사진=서울 시내 약 4만~5만면이 있는 여성우선 주차구역.]

이외에 서울시 주요기관과 지하철역 등에 있는 수유공간, 파우더룸 등 표지판도 대부분 분홍색인 상황이다. 편리함에 고마워하면서도 이를 보는 여성들의 시선이 모두 곱지만은 않다.

이를 두고 미국의 ABC 방송 등 해외 언론도 한때 ‘한국에선 여성전용 공간을 분홍색으로 표시한다’며 논란 거리로 삼기도 했다.

관계자들은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여성인권단체 회장은 “공공기관부터 당연하다고 여기는 남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여성전용 공간만 우후죽순 만들기에 앞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캠페인 등의 사업부터 집중하는 게 평등 실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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