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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 ‘거리공연’이 짜증 ‘거리공해’로
일부 함량미달 공연에 시민 외면
공공장소 망각 소음·길막기 ‘눈살’
관할구청선 “법적 제지 방안 없어”
‘버스킹 허가제’ 도입 필요 지적도


지난 8일 늦은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걷고싶은거리’ 일대. 기타를 멘 거리 공연가가 스피커를 앞세운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음악이 거리에 울려퍼졌으나 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썩 밝지만은 않았다. 누가 봐도 어설픈 실력에 중간중간 음악을 끊어버리는 등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주지 않아서다. 급기야 가사를 잊은 듯 스마트폰을 보며 노래를 이어가자 다수 시민들은 “저게 무슨 버스킹이냐”며 외면했다.

인근에선 기타로 무장한 또 다른 3인조 공연팀이 연주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너무 큰 음악 소리에 지나가는 시민들은 귀를 막았다. 김소연(23ㆍ여) 씨는 “친구에게 약속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공연 소리가 너무 커서 바로 포기했다”며 “요즘은 실력보다 무조건 눈에 띄고 싶은 건지, 거리 공연들이 소리만 크고 콘텐츠는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한 거리 공연가가 ‘홍대걷고싶은거리’에서 기타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낭만을 선사하는 ‘거리 공연’이 일부 상식 밖 공연가로 인해 ‘거리 공해’로 전락하고 있다.

‘버스킹’(busking)으로 칭해지는 거리 공연이란 공연가인 ‘버스커’(busker)가 길 위에서 자유롭게 노래와 춤 등 장기를 선보이는 행위를 말한다. TV 오디션 프로그램 등이 거리 공연가들을 조명하기 시작하자 덩달아 거리 공연 문화도 유행처럼 퍼졌다.

특히 홍대걷고싶은거리는 거리 공연가들를 위해 서울시와 마포구청에서 만든 6곳 무대도 있을 만큼 명소로 언급된다.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나루한강공원 등도 손꼽힌다.

문제는 일부 거리 공연가들이 무대가 공공장소임을 망각한 채 도를 넘는 행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소음과 길막기는 기본이다. 이 날도 심하게는 10~20m 간격으로 거리 공연이 이어지는 통에 옆 사람과 대화는 물론 걷는 데도 지장이 있었다. 일대 상인들에 따르면 제멋대로 가게 문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다 말다툼을 벌일 때도 종종 있다.

한 상인은 “지켜보면 음악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거리에 나서는 공연가들도 많다”며 “눈에 띄기 위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유럽 다수 국가들이 시행 중인 ‘버스킹 오디션’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소한의 검증에 따라 함량 미달 공연가들을 걸러내자는 취지다. 거리 공연가로 4년째 활동 중인 강모(28) 씨는 “영국과 이탈리아 등은 모든 거리 공연가들을 심사 대상에 두고 기준을 통과해야 허가증을 준다”며 “거기서는 허가증 없이 길거리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 행위”라고 설명했다.

현재 행정당국은 거리 공연을 막을 방안이 사실상 없다. 불편 민원이 잇따라야만 겨우 제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홍대걷고싶은거리를 관할하는 마포구 관계자는 “사회 풍속만 해치지 않는 한 구청에서 먼저 거리 공연가들에 개입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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