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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억년 기다려온 청록의 기적…‘은둔자, 청송’더 황홀하구나
-국내 두번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구불구불 산악·산촌 도로 1시간 달리면
금강산 닮은 기암괴석, 청정옥수 눈앞에
변화무쌍한 생태 그대로 보존 감탄사 절로

휠체어도 갈 수 있는 평탄한 산책로 조성
청정 자연에 마을 인심마저도 풍요로워…

은둔의 청송이 베일을 벗고, 알프스, 제주도, 장가계 급 유네스코 지질 공원의 자태를 드러냈다

8개월 전 만에도 청송 주왕산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안동에 들어선 다음 34번 국도에 올라 구불구불한 산악, 산촌 도로를 꼬박 1시간은 달려야 했다.

“청송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한민국 미소국가대표인 청송군 최인서 해설사는 청록의 푸르름이 가득한 7월초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청송 현상’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남한의 한복판을 동서로 종단하는 당진-영덕 간 고속도로의 마지막구간인 청송구간(상주-영덕)이 완공된 지 7개월 지나 외부로 문호가 뻥 뚫렸고, 두 달 전 청송 전 지역이 제주에 이어 국내 두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됐다는 게 ‘기적’으로 표현할 만한 호재들이다. “공항과 항만도 생겼답니다”라는 너스레는 큰 도로가 뚫리니 한시간 이내 대구공항과 영덕항이 있다는 뜻이다.

사실 청송의 기적은 공룡이 살던 1억년전 백악기부터 있었다. 금강산 부럽지 않은 산악 기암괴석과 푸른 옥수, 변화무쌍한 지질현상이 빚어낸 신비는 은둔했기에 잘 보존돼 있었다.

기적의 중심은 주왕산(721m)이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24곳의 지질명소 중 9곳이 주왕산에 집중돼 있다. 깎아지른 절벽, 기기묘묘한 석산을 병풍처럼 그려놓고도 주왕산 입구에서 용추폭포까지 2.2㎞ 산책로는 평탄하기만 해, 네살바기도, 팔순 어르신도 걷고, 휠체어도 갈 수 있는 ‘무장애 코스’나 다름없다.


주왕산 입구, 임진왜란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킨 곳이라는 대조사 관음전 뒷편부터, 기도하는 두 손바닥의 끝부분 처럼 솟은 바위봉우리 ‘기암’이 반긴다. 달갑잖은 중국 스토리를 입혀 깃발 기(旗)를 쓰지만, 자연주의자 청송 사람들의 정서에 비춰 기암(奇巖)이 적절해 보인다.

공룡이 사라진 빙하와 아홉번의 화산폭발을 거쳐 만들어진 변화무쌍한 청송의 생태이다. 용암이 큰 기둥을 만들고 화산재가 엉겨붙거나 세로 침식이 일어나면서 장가계, 황산 같은 단애(斷崖)가 형성된 것이다.

산중으로 접어들면 멀리 연꽃 봉오리를 닮은 연화봉이 반긴다. 단애 가까이 접근해 계곡 다리를 건널 무렵 만나는 시루봉은 시루떡을 쌓은 모양이라지만, 어느 각도에선 경주 괘릉의 페르시아 무인석상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금강산 귀면암의 모습도 보인다.

전쟁 중 산중 병사들이 물을 길어 올렸다는 급수대는 영화 ’아바타‘의 얼굴 길죽한 나비족을 닮았다. 이 거대 아바타 돌의 목 부분은 병사의 목막이 장비 처럼 수직 주상절리로 그려져 있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추협곡의 선녀탕-구룡소-용추폭포으로 연결되는 3단 폭포에 가려면 사람 얼굴 모습을 한, 두개의 거대 바위가 입맞춤할 듯 가까이 붙은 틈새를 지나야 한다. 골뱅이 처럼 용틀임을 했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스크류 모양새가 선명한 세 개의 물 항아리 위로, 청정 옥수가 쏟아진다. 지질의 변덕이 심하기에 절경은 변화무쌍하다. 급류의 소용돌이에 제대로 걸린 바위엔 기계가 천공한 것 같은 원형 구멍이 뚫려 있다.

청송 서쪽 백석탄(白石灘)도 신비롭다. 푸른빛을 가미한 흰색 타일 같은 바위가 즐비하다. 수천만년 강한 물살을 맞다보니 형태는 비정형인데, 표면은 초현대식 건물의 로비 바닥같이 반질반질하다. 하얀 바위와 푸른 신록, 옥빛 계곡물이 3색 조화를 이룬다.

동쪽 부동면 응회암 너덜지대에는 한여름에 더 시원한 얼음골을 만날수 있다. 날카로운 응회암이 겹겹이 쌓이면서 돌 틈새에 그늘을 만들어 공기 온도를 낮춘 다음, 열기가 있는 쪽으로 내뿜기 때문이다. 태양이 쬐는곳은 섭씨 30도가 넘는데 이곳은 7도 이므로 오래 있으면 감기 걸릴지도 모른다. 위장병에 좋은 청송 달기약수는 안마시고 오면 수십만원 손해본 것이다. 약수로 삼계탕도 만든다.

예측불허의 지질현상은 비정형 무늬를 바위에 새긴다. 마그마가 돌 틈으로 들어가 투쟁한 끝에 자기 세력을 넓히다 멈추는데, 돌 단면을 깎으면 꽃모양이다. ‘꽃돌’이라 부른다. 청송 대명리조트옆 관광단지내에서 지질예술의 총아인 꽃돌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백석탄 북쪽으로 파천면 양수발전소를 지나면 만나는 송소고택에서는 청송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마당 한가운데 정원 주변에 탑돌이길처럼 돌을 깔아놓았는데, 어르신이 걸으면서 자식들을 어떻게 키워나갈지 생각해보는 사색의 길이다. 할아버지가 손주의 육아일기를 썼다고 한다. 남녀의 처소를 분리했지만 젊은 자식과 며느리의 방은 가깝게 배치했다.

송소고택마당에선 문화예술 공연도 열린다. 3년전 청송에 출장 공연을 와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던 심재선씨는 돌연 음악을 멈추더니 “이 자리에 스스로 희생하며 영혼과 논밭을 모두 팔아 자식 잘 크라고 해주신 분이 있다”면서 촌로 한 분을 소개한 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고 울먹여,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청송군의 정책은 ’교통 소외지역 1000원 택시 운영‘, ’독거노인 찾아가는 서비스‘, ’노인 일자리 창출‘ 등 소외층과 약자를 위한 것이 많다. 세계적인 청정 자연은 인심 마저 풍요롭게 한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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