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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허 된 성매매 1번지 ‘청량리 588’보상 갈등에 꺼지지 않은 원조紅燈
2015년 재개발 사업 본격화
150여개 문닫고 4곳만 남아


“오빠 여기로 와.”

술과 환락, 악다구니가 교차하던 원조 홍등가가 폐허로 변해간다. 아직 숨은 남아 있었지만….

지난 달 31일 오후 3시께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굵은 알 반지를 낀 주름진 여성이 유리문 밖으로 손짓을 한다. 높은 철제의자 위에 앉아있는 그는 인적이 끊긴 거리를 지나가는 남성을 향해 호객행위를 한다. 청량리에서 20년간 영업을 해왔다는 50대 여성은 자신처럼 쇠락한 홍등가를 지키고 있다. 

‘청량리588’ 일대에서 아직 영업을 하고 있는 성매매 업소. 박로명 기자/dodo@

“청량리가 한창 활발했을 때는 손님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했는데 다 쫓겨나고 4곳만 남았어. 이제는 아는 사람 빼고 안 와.” 쇳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목소리는, 여성이 이곳 홍등 아래서 보냈을 긴 세월을 가늠케 한다.

“도둑놈들, 아가씨들한테 돈 100만원밖에 안주고 다 내보내고. 여기도 2~3개월이면 비워줘야 하는데 다들 수원, 동두천으로 가고 사방으로 흩어져.” 주름진 눈가를 감추려는 듯 연분홍 섀도를 투박하게 칠한 그는 혼자 육두문자를 내뱉고는 이내 유리 너머 황폐해진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량리 588’은 1980년대 150여 개 성매매업소가 성업을 하며 미아리, 천호동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으로 꼽혔다. 지난해 도심재개발사업 본격화로 철거 작업이 진행되면서 앙상한 뼈대와 흔적만 남았다.

이날 성매매 업소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한때 ‘아가씨’들의 뒷모습을 비췄을 대형 거울들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유리문 곳곳에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커다란 ‘X’자가 그려져 있었다.

벽에는 비난의 목소리와 홍등가를 추억하는 목소리가 교차했다. 누군가는 검정색 매직으로 ‘오빠! 삼춘들! 고마웠어요. 588 대표 자기가’라고 써놓았고, 누군가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신고합시다’라고 적었다.

공터마다 둘러쳐 놓은 황갈색 가림막 안에서는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청량리 일대는 1994년 서울시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주민 간 의견 다툼으로 개발이 지연되다 2015년 동대문구가 관리처분 인가를 내리면서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됐다.

지난해 5월 이주가 시작되면서 포주와 세입자들은 청량리4구역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 영업비 보상을 요구하며 토지주, 건물주로 구성된 도시환경정비사업추진위원회와 팽팽하게 맞섰다.

청량리4구역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냉정하게 따지면 여태까지 불법 성매매 업소를 운영해온 세입자들에게 많게는 2000만원까지 보상을 해줬는데 보상금을 5000만원까지 올려달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원래 있던 포주와 세입자 100여 명은 다 떠나고 10명 내외만 남아서 집회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청량리에 남아있는 대책위 관계자들은 ‘조직폭력배로 구성된 깡패! 추진위는 수십 년간 악덕 포주였다’, ‘조폭 추진위는 물러가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건 채 청량리 어귀의 영업장을 지키고 있었다.

이따금 주민들은 익숙한 걸음으로 공터와 폐허를 가로질렀다. 40여 년 동안 청량리에서 거주했다는 박 모(57ㆍ여) 씨는 “예전에 성매매 업소의 호객행위가 심해 이 일대를 다 피해 다녔는데 철거되니까 너무 후련하다”며 “동네 환경이 개선돼 아이들이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고 집값도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청량리 588 일대에는 철거가 마무리되면 늦어도 2021년까지 65층 주상복합건물 4개 동과 호텔, 오피스텔, 백화점이 들어서는 신도심으로 바뀐다.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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