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에는 범죄자들을 처형했던 곳, 이어 도살장으로 사용된 택시기사들 조차 가길 꺼려하는 곳,바로 일본 속 다른 세상,증발한 사람들이 비밀리에 찾아오는 곳이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와 그녀의 남편이자 사진작가인 스테판은 2008년 우연히 증발하는 일본인들에 대해 알게되고 일본으로 건너가 5년동안 도쿄, 오사카 등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발적 실종’을 택한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열여섯 살에 야반도주, 아르바이트 전전, 노숙, 알코올 중독으로 나락에 떨어진 사내, 입시에 실패하고 교도소에 다녀온 후 살던 도시에서 스스로 증발한 갓 스무살 청년 마사오, 빚을 감당하지 못해 병든 어머니를 모텔에 버리고 산야의 더럽고 비좁은 모텔의 직원으로 일하는 유이치 등 이들의 얘기는 남의 얘기 같지 않다.
산야의 주민 중 얼마나 야반도주해서 왔는지, 얼마나 가명을 쓰는지,정부의 지원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자급자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한마디로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도쿄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후지산 자락의 온천들도 이들이 찾는 곳 중 하나.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 오사카에도 ‘가마가사키’라는 산야와 비슷한 곳이 있다. 2011년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먼지를 포대에 담아 한 곳에 모아두는 일을 한 사람들도 이들이다. 저자들은 일본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압력솥 같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받다가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책은 푸른 눈의 이방인이 일본 각지의 그늘진 뒷골목을 5년이나 돌아다니며 관찰해 써내려간 탐사보고서로, 히키코모리, 코스프레 등 일본현상을 뒤늦게 밟아가는 한국사회에도 경종을 울린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