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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임신이 대수냐”…네, 대수 맞습니다
정부가 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며 지난 2006년부터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그저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돈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 울음 소리가 끊기기 직전인 상황에서 국가는 합계출산률을 높일 아이만 귀하게 여길 뿐 그 아이를 열 달 동안 품는 엄마는 뒷전으로 두고 있다. 임산부들에게 ‘임신이 대수냐’, 임신이 벼슬이냐’라고 핀잔만 주고, 일터에선 업무량조차 조정해주지 않는다.

대중 교통 내 임산부 배려석은 색깔만 다른 의자에 불과할 뿐이다. 임산부를 ‘생명을 잉태한 여성’이 아닌 그저 ‘배가 부른 여성’으로 취급하고 있는 현실이다.

10일 임산부의 날을 맞은 가운데 임산부에 대한 언어적인 배려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은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낯선 환경을 마주한다. 뱃속에 자신과 다른 또 다른 생명이 자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걱정, 그리고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겪게 되면서 말 한마디에도 감정 기복을 느낀다.

두 달 전 첫 아이를 낳은 정은서(30) 씨는 출산 직전 친척 어르신이 한 말만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만삭 당시 배가 너무 부른 탓에 걷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가 “임신이 대수냐. 이건 아픈 것도 아니다. 옛날에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며 핀잔이 담긴 답변을 들은 것. 정 씨는 친척 어르신의 답변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저 조용히 참고 넘기는 수 밖에 없었다.

정 씨는 “출산을 앞두고 가뜩이나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짜증이 났다”며 “그 분은 위로한답시고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겪는 고충을 깎아 내리는 듯 했다”며 울분을 삭혔다.

임산부에 대한 행동적인 배려는 훨씬 더 부족하다.

임산부의 날을 맞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와 일반인 등 총 1만6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산부가 일터에서 업무량을 조정해주는 배려를 받았다는 응답률은 지난해 11.5%에서 11.3%로 줄었다.

몸이 무거워진 임산부 10명 중 9명은 일터에서 여전히 임신 전과 동일한 업무량을 수행하는 것이다. 짐 들어주기 또한 9.2%에서 8.6%로 줄었다. 좌석 양보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비율을 59.4%에서 64.2%로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10명 중 4명은 임산부를 위해 좌석을 양보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을 품는 과정에서 극도의 예민함을 경험하는 임산부들은 타인의 작은 말이나 행동에 쉽게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 심한 경우 우울증까지 경험하기도 한다.

지난해 아들을 출산한 김희정(34) 씨는 임신 초기에 남편이 말한 한마디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김 씨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참외가 나오는 것을 보고 군침이 돌았다. 김 씨는 참외가 먹고 싶다는 말을 꺼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임신했다고 괜히 오버하지 마라” 뿐이었다. 서운함을 느낀 김 씨가 눈물을 보이자 남편은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말로 받은 상처는 가시지 않았다.

실제로 제일의료재단 제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수영 교수팀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3800여 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20%의 임산부가 임신 중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중 우울증은 산후 우울증의 위험성을 세 배 가량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임신부와 태아의 관리 소홀, 영양 결핍, 자살 등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신 초기에 우울증 위험도가 19.3%로 가장 높았고 산후 한 달 시점이 16.8%, 임신 말기가 14%로 그 뒤를 이었다.

우울증 위험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 임신 초기의 경우 불안 점수 또한 가장 높았다.

갑작스런 신체적 변화 등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문제와 유산에 대한 걱정 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7명. 올해의 예상 합계출산율은 이보다 훨씬 낮은 1.05명. 남녀가 만나 단 한 명의 자녀만 갖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합계출산율이 최소 2.1명이 되어야만 현재의 인구 수가 다음 세대에도 유지된다고 보고 있다. 국가 경제의 근간이 인구 수가 쪼그라들고 있다. 그야말로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미래를 짊어질 아이가 귀하다면 그 아이를 품는 엄마 또한 귀하다. 국가의 미래를 품는 임산부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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