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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설·손찌검·침뱉기 예사…金순경 “주폭과 전쟁요, 일상이죠”
영등포 지구대 현장 가보니
오후 7시 부터 잇단 신고벨소리
취객들 지구대서도 고성·행패

시민들 민원·고민거리 상담 등
‘동네 홍반장’ 역할도 톡톡
“가장 힘든건 일보다 차가운 시선”


“야! 나 안 취했어~ 만지지 말라고! 너네가 뭔데?” 술에 취해 비틀대는 60대 남성이 경찰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소주 10병을 마셨다고 주장하는 그는 경찰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남성의 큰 목소리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출동한 경찰은 표정 변화 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와서 오게 된 거예요. 선생님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지난 18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중앙지구대 경찰들과 동행하며 가장 많이 목격한 장면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경찰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참는 것은 일이다. 박지훈 순경은 “주취자가 때리고 욕하고 침 뱉고 이런 일은 너무나도 흔하다”며 “최대한 타이르려고 노력하지만 너무 심하게 욕을 하거나 마구 때릴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오후 7시께 영등포3가 먹자골목을 찾은 경찰은 계속된 신고에 이곳을 한시간 반 가까이 떠나지 못했다.

일선 치안현장에서 일하는 경찰관들은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부족과 불규칙한 생활패턴에 시달린다. 이같은 불균형은 몸과 마음에 악영향을 미친다. 서울 시내 지구대에서 야간근무 중인 한 경찰관 [헤럴드경제DB]

▶ 폭언, 욕설, 돌발 행동…‘한숨만’= 한바탕 주취자들과 전쟁을 치르고 지구대에 돌아왔지만 지구대의 분위기도 살벌했다. 경찰을 때려 공무집행방해로 현행범으로 체포된 40대 여성 한명이 소파 한 쪽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 여성은 도서관에서 소란을 피워 출동한 경찰에게 주먹질을 해 지구대에 오게 됐다. 그는 어떤 혐의로 지구대에 오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경찰에게도 “대한민국이 이래서 되느겠냐”며 욕설을 날렸다. 옆에 앉아 있는 기자에게도 “뭘 쳐다보냐. 면상 치우라”고 큰소리를 쳤다.

다른 쇼파에 앉아있던 한 남성은 휴대폰을 들고 연신 경찰들을 촬영했다. 이어폰을 안준다는 이유로 PC방 여성 종업원의 배를 주먹으로 때려 현행범으로 체포된 동영상을 왜 찍냐는 질문에 “경찰이 어떻게 대하는지 다 기록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담당 경찰은 노련했다.“내가 왜 여기 있는지 황당하다”고 주장하는 그에게 경찰은 “선생님께서 종업원을 때리신 적 없으세요? 선생님 저희가 CCTV로 확인했습니다”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피의자는 말을 더듬으며 “그럼 내 변호사와 통화를 해보라”고 전화기를 들이 밀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 경찰은 “이 곳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화장실, 주유소, 고민상담소…‘우리동네 홍반장’=40대 남성이 다급히 지구대에 들어왔다. 무슨 일로 왔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민망한 듯 “볼일이 급하다”며 화장실을 찾았다. 하루에 10번 이상 있는 일이다.

지구대는 시민들에게 다용도였다. 오후 10시30분께 지구대 창문 너머로 한 남성이 “충전 좀 할게요”라고 전기 콘센트를 찾았다. 뇌혈관질환 협심증으로 10분 이상 걷지 못해 전동차를 끄는 이용철(66)씨에게 지구대는 전동차를 무료로 충전시키는 ‘주유소’였다. 이 씨는 일주일에 3번 이상 집에 가는 길에 이곳을 들려 배터리를 채운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길거리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이 곳 경찰들이 목숨을 구해줬다”며 “너무 감사한 분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경찰은 고민상담사 역할도 했다. 다음날 오전 12시 30분께 순찰차는 영등포 집장촌 앞에 섰다. 신고를 한 60대 남성은 성매매업소를 가리키며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워 환불 요청을 해도 안 해줘서 경찰을 불렀다”고 했다. 난감해하는 경찰에게 그는 “작년에 마누라를 잃어서 너무 외로웠다”며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하소연은 지구대로 이동할 때까지 계속됐다. 성용섭 순경은 “접수 받고 하는 모든 일은 업무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며 “시민들의 하소연이나 넋두리들은 일단 다 들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 일보다 힘든 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새벽 2시가 되어서야 신고가 잠잠해졌지만 경찰들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주희 경장은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신고가 들어온다”며 “늘 긴장해야 한다”고 했다. 1년 반 넘게 육아휴직으로 쉬다가 최근에 지구대로 복귀한 그는 “쉬면서도 일이 너무 그리웠다”며 “일이 고되긴 하지만 원래 힘든 일 하라고 존재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일보다도 “시민들이 경찰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혁 경장은 “최근 경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큰 것을 알고 있다”며 “열심히 하는 경찰들이 많은데 시민들의 신뢰를 잃은 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선할 점은 개선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정희 4팀장은 “크고 작은 모든 사건사고가 힘들지만 우리 일을 알아주지지 않을 때 가장 힘들다”며 일하는 후배들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면서 “지난 33년 동안 경찰을 하면서 그래도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팀장 옆에서 서류작성에 여념이 없는 고진수 순경에게 왜 이 힘든 일을 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보호를 위해서”라고 짧게 답했다.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 없다는 듯 다시 서류를 들여다 봤다. 그는 지난 8월 이곳으로 첫 발령을 받은 막내 경찰이다. 고 순경은 “힘들 때도 많지만 좋은 사람들과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늘 경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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