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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인 시구(始球) 논란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지난 25일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 한국시리즈 1차전. 문재인 대통령이 돌연 참석했다. 그냥 참석만 한 게 아니다. 직접 마운드에 올라 야구공을 손에 들었다. 문 대통령이 시구하자 경기장은 떠나갈 듯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야말로 ‘깜짝 등판’이다.

대통령의 시구는 문 대통령만 특별한 것은 아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잠실에서 열린 2013년도 한국시리즈 3차전에 직접 시구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규시즌 개막전 시구를 추진했으나 경호상 이유로 막판 취소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섰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한국시리즈 1차전에 ‘등판’했다. 전두환ㆍ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 이승만 전 대통령도 시구에 나섰다. 대통령이 임기 중 야구 경기 시구자로 나서는 건 통과의례 격이다. 아예 미국은 야구 종주국답게 백악관과 가까운 지역의 구단 개막전 시구를 대통령이 맡는 전통이 있다. 때문에 대통령이 시구에 나서지 않으면 오히려 뉴스가 된다. 

[사진제공=청와대]

문 대통령의 시구에 광주는 환호했다. 관중은 즐거웠고, 선수들도 반겼다. 물론, 기아가 경기까지 승리했다면 더 풍성한 후일담이 오갔을 터, 문 대통령으로선 내심 홈경기 패배가 아쉬울지 모르겠다.

어쨌든 광주는 유쾌했다. 그리고 26일. 이번 시구는 정세균 국회의장으로 알려졌다. 어째 느낌이 사뭇 다르다. 1차전에 이어 2차전까지 정치가 등판하니, 여기서부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우연도 겹치면 필연이다. 예능 같은 즐거움이, 다큐 같은 무게감으로 바뀐다. ‘행정부, 입법부 수장이 시구에 나섰으니, 3차전은 사법부 수장일까?’, ‘아예 나머지 한국시리즈는 5부요인이 차례로 등판하나?’, ‘광주 구장의 연이은 시구는 호남 민심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일까?’…. 머릿 속 생각은 꼬리를 문다. 

[사진제공=청와대]

한때 연예인 시구 논란이 인 적 있다. 연예인이 사적 목적으로 프로야구 시구를 활용한다는 비판에서다. 역으로 ‘개념시구’가 또 유행했다. 논란이 논란이 된 것도, 유행이 유행이 된 것도 모두 같은 이유다.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 같은 거다. 없으면 허전하지만, 과하면 해가 되는. 시구가 없어도 문제이지만, 또 시구가 스포츠 정신을 벗어나는 것도 문제다. 스포츠에 정치적 잣대를 언급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마음이 무겁다.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김응룡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전 해태타이거즈 감독이다. 기아 팬에게 ‘김응룡’이란 이름은 역사다. 원래 1차전 시구자로 예정돼 있었으나 무산됐고, 2차전에도 나서지 못한다. 2차전까지 넘겼으니 다음 광주 경기는 6차전이다.이번 한국시리즈가 다시 광주에서 열릴지, 그래서 김 전 감독이 옛 해태의 영광을 상기시키며 광주 무대에서 시구자로 나설 수 있을지, 현재로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굳이 김 전 감독이 아니더라도, 전 국민이 지켜보는 그 기회가 절실한 사람도 많다. 알려야 할 의인도 있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 국민에 널리 홍보할 인사도 있겠다. 그냥 야구를 너무나 사랑하는 팬도 좋다. 유독 정치인에 민감한 게 가혹할 수 있지만, 한국 현실이 또 그렇지 않은가. 혈육 간에도 ‘정치’와 ‘종교’ 얘기는 피하라고 말이다. 게다가 지역주의가 기저에 깔린 프로야구는 정치와 의도적으로라도 거리를 둬야만 한다. 정치를 위해서도 그게 낫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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