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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한 리더’ 스트롱맨은 ‘환상’에 불과하다
-아치 브라운 옥스포드대 정치학 교수 일침
권력 움켜쥐고 국가 중대사 좌지우지 ‘위험’
히틀러·스탈린 등 자기능력 과신 최악 오판
-민주주의 체제서 1인 권력 갈망은 아이러니
이분법 거부 리더의 유형 다섯 가지로 풀어
“강력함보다 유능한 리더가 좋은 리더” 환기


‘절대권력자의 반열에 오른 시진핑’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아베의 절대적 지지’ ‘미국 우선주주의의 트럼프’ 등 각국의 권력은 스트롱맨에게 집중되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중들은 강한 리더십이 상황을 통제해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강한 리더를 향한 갈망은 2012년 대선보다 2016년 대선결과에 두 배나 더 영향을 미쳤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걸 막고 제재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위계질서의 최상위자에게 권력을 과하게 쥐여주는 현상은 아이러니하다.

“제도적 권력은 리더의 잠재적 영향력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권력의 수단을 손에 넣는 것이 리더십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정치리더십은 이렇다 할 권력도 후원자도 없는 사람의 메시지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영감을 불러일으킬 때 드러난다.”(‘강한 리더라는 신화’에서)

아치 브라운 옥스포드대 정치학 명예교수는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강력한 리더를 갈망하는 이런 현상을 경계하며, 강한 리더십은 환상”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저서 ‘강한 리더라는 신화(The Myth of The Strong Leader·사계절)’에서 20세기 이래로 전 세계에 출현한 리더들을 분석, 강한 리더들의 실패가 얼마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는지 신화의 허상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강한 리더라는 평가에 연연하거나 자부심을 느끼는 리더는 특히 다른 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는 전쟁을 통해 평화기의 리더보다 더 높은 명망을 받기 때문이다.

가령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는 본인의 신화에 스스로 넘어간 결과, 특히 대외 정책 부문에서 최악의 오판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천재성을 과신했고 자신의 강철같은 의지가 반드시 승리를 가져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자는 독재정권에서든 민주주의에서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리더는 시간이 갈수록 본인의 판단력에 탄복하면서 정부 내부에서 나온 반대 의견은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 중 스탈린과 한국전쟁 얘기는 관심을 끌 만하다. 스탈린은 김일성이 남침, 공산화 구상을 처음 꺼냈을 때 부정적이었다. 당시 남한에는 7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미국과 직접적인 대립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해 봄, 미군이 군사자문단 500명만 남기고 철수하고 베이징에 중국 공산당이 들어서자 마음이 바뀐다. 만약의 경우 중국이 도울 수 있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 것. 스탈린은 군수 물자 제공을 약속했다. 반면 마오쩌둥은 북한에 대한 빚과 공산화 명분으로 300만명의 병사를 지원한다. 그러나 미국, 영국 등 유엔의 참전으로 당초의 계획이 어렵다고 판단한 김일성은 적극 휴전회담에 응하지만 스탈린은 이를 말렸다. 죽기 직전까지도 마오쩌둥과 김일성에게 휴전협상을 최대한 지연시키라고 촉구했다는 것. 스탈린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군비확장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실책으로 거론된다.

저자는 모든 리더를 강한 리더와 약한 리더,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로 구분하는 이분법을 거부하고 리더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확장한다. 재정의형 리더, 변혁적 리더, 혁명적·권위주의적·전체주의적 리더 등이다.

‘재정의형 리더’는 기존의 관념에 도전,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을 다시 정의하고 급진적인 정책 변화를 가져온 리더를 말한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대처 총리, 독일의 헬무트 총리가 이에 해당된다.

대처는 ‘영국병’으로 불린 복지국가 정책을 멈춰 세우고 영국을 시장이 주도하는 국가로 바꿔놓았으며 헬무트 콜은 고르바초프의 집권으로 촉발된 변화를 재빠르게 포착,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됐다. 


‘변혁적 리더’는 한 나라의 정치 체제나 경제 체제, 국제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 리더를 가리킨다. 저자는 프랑스의 드골, 스페인의 수아레스,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중국의 덩샤오핑, 남아공의 만델라를 제시한다. 저자가 가장 긍정적으로 보는 리더의 상이다. 그런데 이런 변혁적 리더는 영국과 미국에선 발견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영국에서는 변화가 충분히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미국은 권력을 여러 국가기관이 철저하게 분점하고 있기 때문에 변혁적 리더가 등장할 여지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혁명적·권위주의적·전체주의적 리더’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저자는 혁명적인 리더가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뒤 형태는 다르지만 권위주의적이기는 매한가지인 새 정권을 수립하는 경우, 다시 전체주의 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하다며 스탈린을 예로 든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국민을 체포, 구금, 살해했음에도 최근까지 러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 1위를 차지한 것은 바로 “인류에게 강한 리더가 필요하다는 환상의 극치이자, 그런 리더가 권력을 휘두르며 독주할 때 반드시 억압과 대학살로 이어진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경고”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좋은 리더십은 강한 리더십이 아닌 유능한 리더십임을 환기시킨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합리적이고 합의 추구적인 리더와 리더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가감없이 주장할 수 있는 줏대있는 각료들, 그리고 이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숙의할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잘 갖춰졌을 때 개인이 모든 과정과 결정을 독점하는 강한 리더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민주적 거버넌스다.

저자는 이를 위해선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함을 강조한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를 따르는 것이다. 정당한 법적 절차란 관련 부서를 책임지는 고위 정치인들을 모두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리더십의 본질과 민주주의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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