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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우’는 과연 누구의 조상일까…정치에 희생된 동북아史
최근 동북아 역사에서 관심을 모으는 ‘인물’이 치우다. 중국의 전통적인 인식에 따르면 치우는 묘민 집단에 속하며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 악의 상징이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은 치우를 중화민족의 3대 조상 중 한 명이라며 대규모 사당을 짓고 황제, 염제와 함께 성대한 제전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 먀오족 역시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기리고, 한국도 1990년대 말부터 재야 사학자를 중심으로 치우가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20세기 말들어 치우가 갑작스레 세 민족의 영웅적 조상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동북지역 소수민족 연구자인 김인희는 중국의 방대한 문헌과 사료 연구를 통해 ‘치우현상’의 배후에 신민족주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이탈하려는 민심을 결집시키기 위해 애국주의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종래 청나라의 멸망을 무능부패로 보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던 데서 전통문화를 계승, 과거의 중화질서를 회복하자는 쪽으로 바뀐다. 염제와 황제를 중심으로 중화민족을 결집시키는 신민족주의가 대두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 90년대들어 위서로 알려진 ‘규원사화’나 ‘환단고기’에 대한 관심과 함께 황웅천황 이전에 치우천황이 존재했다는 걸 근거로 한국인의 조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저자는 치우가 세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쓰는 역사, 즉 심사를 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역사기억의 선택적 강화와 구조적 망각, 재구성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집단기억을 새롭게 창조해낸 ‘고대사 만들기’의 전형적인 예”라는 것.

저자는 치우가 생존했다고 하는 기원전 3000년경은 신석기시대 말기로 국가가 성립되지 않았다며, 신화전설상의 인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역사과잉을 극복 방법도 제시했다. 무엇보다 정치가 역사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또한 학자들은 자기비판적 시각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갑골문 해석, 접하기 힘든 고문헌의 번역, 잘 알려지지 않은 먀오족 역사서로는 드물게 현장답사 등 실증적 접근이 신뢰감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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