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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돈줄’ㆍ‘정치력’에 밀린 ‘위안부 기록물’…세계기록유산 등재 보류
-日, 9개국 시민단체가 신청한 기록물에 “정치화 목적의 산물”
-日, 분담금ㆍ외교력 동원…유네스코 기억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심사 전부터 “등록 보류”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타이완 등 9개국의 시민단체가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노력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유네스코는 31일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를 통해 위안부 기록물에 대해 ‘대화를 위해 등재 보류 권고’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위안부 기록물이 ‘정치화’의 산물이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화권고를 내린 것이다.

시민단체가 제출된 위안부와 일본군 군율에 관한 기록은 위안부가 합법적으로 운영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안부 기록물은 인권 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발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상규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해당자료가 ‘상호 이해와 존중원칙’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유네스코 기억유산의 취지를 위배한다고 주장하며 적극적인 로비를 펼쳤다. 가장 큰 무기는 유네스코 분담금이었다. 일본의 유네스코 분담금은 최근 탈퇴를 선언한 미국(2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전체의 10%가량을 차지한다. 일본은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 기억유산에 중국의 난징 대학살 자료가 등재된 이후 통상 매년 4월 내던 분담금을 12월 말에 내고 있다. 일본은 올해 유네스코 분담금을 10월 말인 현재까지도 내지 않은 상태도. 이로 인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 기록물 등재심사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위’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유네스코 안팎으로 제기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최근 유네스코 동시탈퇴를 선언한 시점도 일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정치적 입지를 이용한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일본 문부과학성과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반대운동을 주도해온 다카하시 시로(高橋史朗) 메이세이(明星) 대학교 교수는 일본 정부에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노리고 있다”며 “상임 이사국인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지난 2015년 난징(南京) 대학살 자료의 등재를 받아들였다. 일본은 분담금으로 유네스코에 신뢰받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야 한다”고 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 종료를 2주 남겨둔 데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노리고 있는 보코바 사무총장에게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억유산 등재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외에도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위원회(MOWCAP)의 일본대표를 외무성 내에서도 힘 있는 인사로 선정하는 등 외교전을 펼치며 IAC 위원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주력했다. IAC 위원 선별 및 검증제도의 개혁을 촉구하며 유네스코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 결과, 유네스코는 앞서 18일 집행위원회에서 일본이 주장한 세계기록유산 제도 변경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주요 내용은 사실관계나 역사 인식 문제에서 관계국 사이에서 이견이 있을 때는 관계국들의 의견 청취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압박외교속에 압둘라 알라이시 IAC 의장은 유네스코 기록유산 심사가 진행되기도 전인 20일 일본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 제도대로 심사하면 유네스코가 격렬한 대립의 장이 될 것”이라며 보코바 총장에게 위안부 자료의 심사 연기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문제는 오는 15일 취임하는 프랑스 문화부 장관 출신의 오드리 아줄래 차기 사무총장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아줄레 총장도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를 주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내부에서는 세계기록유산 제도가 당사국 간 갈등을 유발하는 측면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가 등재를 공동 추진한 ‘조선통신사 기록물’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모두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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