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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사람] 방위사업청 팀장된 전직 판사…“나는 사람 정재민”
-정재민 방사청 원가검증팀장 “계속 꿈 꾸며 살고 싶어”
-판사ㆍ소설가ㆍ외교부 자문관ㆍ방사청 공무원 ‘변신’
-“중요한 건 사회적 지위 아닌 ‘내가 주도하는 삶’”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다. 큰 고민없이 문과를 택했고, 법대를 나와 판사가 됐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었지만, 밀려드는 사건에 치여 삶의 여유가 없었다. 어느날 문득 ‘이게 최선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정재민(40ㆍ사법연수원 32기) 방위사업청 원가검증팀장은 법원을 떠났다.

최근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에서 만난 정 팀장은 “사람을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원에 있을 땐 사건 당사자가 아닌 분들도 저를 판사라고 불렀어요. 미국에서는 보통 사람을 부를 때 ‘퍼스트 네임’을 부르잖아요. 일본에서도 ‘ㅇㅇㅇ 상’ 이라고 하고요. 인사할 때 명함을 건네고 내가 속한 집단의 직함으로 불리다 보면 가끔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같은 느낌도 들어요.”

 
▶정재민 △대구지법 판사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 △ICTY 재판연구관 △방위사업청 원가검증팀장(現) △저서 ‘소설 이사부’(2010 포항국제동해문학상), ‘보헤미안 랩소디’(2014 세계문학상),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 현대사’, ‘독도 인 더 헤이그’

사실 정 팀장은 법원에서도 재주꾼으로 통했다.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과 유고UN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에 발탁됐고, 틈틈이 쓴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와 ‘이사부’로 제10회 세계문학상과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받았다. 이런 그가 지난 2월 법원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다들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업을 바꾸는 이유에 대한 주위 해석도 제각각이었다. ‘방위사업 분야 변호사를 하려나보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나보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법원에 있을 땐 매일 밤늦게 들어가고, 주말에도 하루는 일해야 했죠. 바쁜 조직에 있다보니 ‘여지’가 없는 삶을 살았어요. 하지만 제 삶을 제가 결정하는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판사라는 직업이 싫었던 건 결코 아니었다. 보람있는 일이었고, 사회에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누가 ‘평생 이것만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긍정할 자신이 없었다. “어떤 일이 좋다고 해서 한 번 사는 인생에 그 일만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가령 유럽 여행을 갔는데, 파리가 좋다고 계속 파리에만 머무는 관광객은 드물지 않을까요.”

법원이 분쟁의 종착지라면, 방위사업청은 생산의 시작점이다. 시장가격조차 형성되지 않은 신무기들이 개발되고, 적정한 가격 책정을 위해 숫자를 읽는다. 팀원 20여명이 지난 6년 간 절약한 세금이 1조5000억원에 달한다. 다만 밖에서 방위사업청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 “직원이 1700명이나 되다 보니 일탈행위를 하는 사람도 발각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성실하고 청렴해요.”

정 팀장에게 ‘판사에서 정부부처 공무원이 됐다’는 관점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일 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주도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글을 쓰는 일도 그렇게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다. “글을 쓰는 건 고된 작업입니다. 쓸 때는 힘들고, ‘왜 나는 이것밖에 못쓰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쓰고 나면 내면의 농도가 바뀌고, ‘쓰고 난 뒤의 나’가 ‘쓰기 전의 나’와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그는 원고를 탈고한 뒤 느끼는 기분을 ‘삶의 한 자락을 살았다는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누리는 행복감은 거창한 데서 오지 않는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양재천을 달리면 페달을 밟을 때의 리듬감에서도, 마음에 드는 곳에 멈춰 서서 책을 보는 순간에도 찾아온다. “흔히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최소한’을 갖춘 뒤에 진짜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갖춤의 시기는 좀처럼 오지 않고, 그렇다 하더라도 남은 삶이 많지 않겠죠. 저는 여전히 방황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크고 작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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