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문재연의 외교탐구] 원칙 지켰지만 과제도 많은 文대통령의 방중외교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탈 많고 말 많던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訪中)외교가 16일 마무리됐다. 우리가 얻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성과만 얻는 정상외교란 없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뭔가를 얻으면 주거나, 잃는 일이 발생한다. 득과 실, 그리고 실수 등을 꼼꼼하게 따진 뒤 향후 외교전략을 짜는데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리장도(笑裏藏刀)…몸 낮춘 文대통령, 사드보복 철회 이끌었다= 문 대통령의 방중외교에서는 웃음 속에 칼날을 품은, ‘소리장도’의 전략이 빛을 발했다. 

일단 이번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로 경색됐던 한중관계를 풀어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중국 국빈방문 기간 내내 몸을 낮추고 중국을 달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대의 연설에서는 “중국이 법과 덕을 앞세우고 널리 포용하는 것을 중국을 대국답게 하는 기초”라며 운을 띄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중국에서 장관급이 맞이했던 것과 달리 차관보급이 나와 ‘홀대론’이 불거졌지만, 의연한 모습을 초지일관 유지했다. 

<사진1> [사진=연합뉴스]

몸을 낮춘 결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強) 중국 총리로부터 사드와 관련해 발언수위를 절제하거나 사드 경제보복 철회를 사실상 공식화한 발언을 이끌어냈다. 중국이 목표로 하는 ‘사드 철회’엔 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안보원칙’을 지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10월 31일 사드 협의가 무색하게 사드 및 이른바 ‘3불(3不) 입장’을 놓고 압박을 계속했던 그동안의 행보와는 대조적이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한중관계가 한 단계 풀렸음을 의미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정치경제학 교수는 “지난 1년간 사드갈등에서 벗어나 한중관계가 새로운 관계 설정의 단초를 마련했다”면서 “중국의 핵심 국책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ㆍ신남방 정책의 연계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양국 간 신 협력모델을 구축할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2> [사진=청와대 제공]

▶만절필동(萬折必東)…저자세 전략, 독 될 수 있어= 그러나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전략은 되레 ‘덫’이 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자체를 낮춘 방중외교는 공공외교 차원에서는 실(失)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구한말, 간도가 청나라의 영토라는 주장에 조선은 중국을 추켜세우면서도 간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꾼 뒤에도 간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했다. 하지만 을사조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은 간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멈추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일본의 간도진출을 견제하려던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결국 일본에 합병됐고, 독립 이후에도 간도는 한국의 땅이 아닌 중국의 땅으로 남아있다.

이같은 역사는 지나치게 몸을 낮추면 우리의 협상력이 되레 낮아질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문 대통령의 방중 내내 허술한 중국의 의전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왕이 외교부장이 자신의 카운터파트도 아닌 문 대통령에게 악수를 하고 팔을 두드려 논란이 됐다. 의전의 ‘꽃’이라고 불리는 한중 공동성명과 공동기자회견도 없었다.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중국 측은 양국 정상의 ‘친교행사’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환영식-회담-공식만찬’이라는 ‘밋밋한’ 일정이 이뤄졌다.

비록 한중관계 개선이 이뤄진 건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은 대국이고 한국은 주변국이다’ 식의 관계설정은 되레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노영민 주중대사가 지난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의 방명록에 쓴 ‘만절필동’(강물이 1만 번을 굽이쳐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이 논란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절필동은 충신(忠臣)의 절의와 기개를 절대 꺾을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사진3> [사진=연합뉴스]

▶의전 논란 부추긴 성급한 일정조율= 자세를 낮춘 정부의 방중외교가 장기적으로도 ‘소리장도’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사실 이번 문 대통령의 방중에서 ‘홀대론’을 키운 것은 중국이 아닌 다름아닌 청와대 실무진이었다.

통상적으로 외국 정상의 방중은 난징대학살 추모식이 열리는 시기에 추진되지 않는다. 시 주석이 참석해야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3일 문 대통령을 맞이할 인사는 장관급에서 차관보급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예견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의 ‘혼밥’도 사실 예상된 일정이었다. 문 대통령의 14일 서민형 조찬이 ‘만두식사’로 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시 주석과 공감대를 형성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것을 차치해도 문 대통령은 국빈만찬까지 중국 측 핵심인사와 밥 한끼도 함께하지 못했다. 왜일까.

중국은 위계질서가 철저한 나라다. 강 교수는 “중국 권력의 최고봉에 있는 시 주석이 문 대통령과 식사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리 총리나 중국의 다른 지도부 인사가 문 대통령과 식사를 할 순 없다”며 “오히려 시 주석보다 낮은 급의 인사가 문 대통령과 먼저 식사를 하는게 외교결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좀 더 정교하게 일정을 짰더라면 문 대통령의 이른바 ‘혼밥’ 논란은 논란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국빈방문 중 중국 공안이 추천한 경호업체 직원이 청와대 출입 기자 2명을 폭행하고 청와대 관계자를 밀친 사건도 청와대와 외교부 의전 및 경호담당 부서에서 사전 조율을 꼼꼼히 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도, 한중관계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문 대통령의 방중외교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국익을 더 확보해나가면 된다. 강 교수는 “분명한 것은 향후 대중외교는 전략과 전술 모든 면에서 정교하고 치밀해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성과는 성과대로, 과제는 과제대로 인정하고 우리들의 원칙을 견고하게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munja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