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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말은 무슨…컵밥 한그릇 먹고 또 공부해야죠”
‘노량진 컵밥거리’ 가보니
시험 일정 대부분 끝나 다소 한산
일부는 내년봄 ‘고단한 시험준비’
“익숙한 혼밥, 눈치볼 새 없어요”


20일 찾은 서울 노량진 컵밥 거리에서 덮밥, 쌀국수, 떡볶이, 수제비 냄새가 풍겨왔다. 수많은 수험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 몇 주가 지났지만, 내년 봄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연말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컵밥 집으로 향했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소가 된 컵밥 거리는 최근 1년 중 가장 조용한 시기다. 시험 일정이 대부분 끝나 재수생도 공무원 준비생도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연말 계획이요? 집에는 안 들어가려고요.” 컵밥으로 식사를 한 조모(25ㆍ여) 씨는 종종걸음으로 노량진 고시촌으로 향했다. 조 씨는 “서울시가 3월에 추가공채를 통해 300명 넘게 뽑는대요. 설날엔 집에 한 번 내려가려고 했는데 당장 코앞이니까…”라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혼밥은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컵밥 거리를 찾는 대다수 수험생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묵묵히 3000원 안팎의 비교적 저렴한 메뉴에만 집중할 뿐이다.

“시험은 2주 전에 끝났지만 3월하고 8월에도 시험이 있어서 계속 공부 태세에요.” 덮밥을 파는 컵밥 집에서 만난 경찰 공무원 준비생 오모(24) 씨는 “스터디를 함께 해온 사람들도 아직 노량진에 남아있어요. 그렇지만 혼자 밥 먹을 때가 더 많아요”라며 익숙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9급 공무원 준비를 위해 천안에서 올라온 김지호(20) 씨는 “대학에 가도 취업이 잘 안된다고 해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며 “스무 살을 조금 다르게 보내다 보니 추억은 없지만, 많이 노력했다. 군대 가기 전에 자리를 잡아놔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절실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눈 쌓인 컵밥 거리의 적막을 깬 건 반갑게 단골을 맞이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였다.

이곳에서 가게 ‘현주네’를 운영하는 하현주(58) 씨는 익숙한 단골 학생들을 보며 “오늘 뭐 줄까?” 친근하게 물었다. 하 씨는 “우리 딸하고 나이가 비슷해서 다들 자식 같다. 단골들은 얼굴만 보면 ‘며칠에 무슨 시험 보겠구나’하고 안다”고 말했다. 그는 “합격하면 노량진은 지긋지긋해서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하는 수험생들이 ‘그래도 컵밥은 한 번씩 생각나더라’며 찾아오곤 한다”고 뿌듯해했다.

누군가에겐 쓰라림과 추억이 공존하는 거리지만 한편으론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본래 노량진역 앞 학원가에 밀집돼 있던 ‘컵밥 거리’는 인근 상점 상인들과의 갈등으로 2015년 10월에 현재 위치인 사육신 공원 맞은편으로 이전했다.

이곳 상인들에게 바라는 바를 물었다. “노량진의 명물이라지만, 터를 옮기고 나서는 역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도 보이지 않는다. 내년 봄엔 ‘컵밥 거리’도 큰 상징물 하나 세울 수 없을까”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컵밥 거리를 지나치던 공무원 준비생 이모(28) 씨의 소원은 역시 합격이었다. 그는 “컵밥 많이 먹었죠. 올해는 잘 안 왔어요. 가게마다 사장님 얼굴이 너무 익숙해서요”라며 “내년 봄엔 합격해서 여길 떠나려고요. 그러고 가서 인사드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바람은 매웠지만 노량진 사람들은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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