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대리운전의 세계①]“아차하다 날아간 콜”…여기는 한밤 도로 위 ‘대리 전쟁터’
-늘어나는 기사에 투잡족ㆍ알바생 경쟁 치열
-“일부는 2~3개 콜 부르고 선착순 1명만 데리고 떠나”
-1명당 3000원 택시셔틀에 "막차 끊겨도 안심”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직장인들이 술을 마시고 귀가길에 오르는 야심한 시각, 대리 운전 기사들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달 12일 밤, 콜 위치를 향해 서울 도심을 전력 질주하는 대리기사들을 만났다. 0.5초 안에 결정되는 ‘콜 선점’ 경쟁은 피말리는 싸움이지만 캄캄한 밤에 손님을 내려두고 외딴 도로에 홀로 내린 대리 기사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함께 올빼미 버스와 택틀(택시 셔틀의 줄임말)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을 함께 하는 짧은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이날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합정역 6번 출구에 위치한 이동노동자 쉼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는 오후 10시께까지 2시간여가 남은 이른 시간이지만 대리 기사들은 속속들이 합정역 인근으로 모여들었다.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콜을 기다리는 대리기사의 휴대폰. 불경기를 피하지 못한 대리기사 업계를 보여주듯 근처 1km 근방에서 울리는 콜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5km 이내로 거리를 멀게 설정해야 콜 몇 개가 뜨는 모습.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택시는 심야 할증, 대리가사는 심야 할인=“택시는 야간 할증할 때 대리는 ‘심야 할인’을 해요”. 낮에는 직장인으로 생활하며 대리기사로 투잡을 하고 있는 박진형(34ㆍ가명) 씨는 “밤에 택시는 적어지고 대리는 많아지지 않냐. 밤이 늦어질수록 대리비가 점점 낮아진다”며 “2만원에 갈 곳을 15000원에 가자는 콜이 많이 온다. 그마저도 빨리 수락하지 않으면 다른 기사가 가져간다”고 ‘대리 운전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 씨가 투잡을 뛰는 이유는 먼 통근 거리와 4세 아이 때문이다. 그의 집은 인천, 회사는 파주다. 그는 “집 근처로 가는 콜을 잡을수 있으면 이득이다. 월 30만원 정도 벌게 되면 가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박 씨와 같이 젊은 투잡족이나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로 대리 운전을 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치열해진 대리운전 시장에 대리 경력 8년차 대리기사 박남정(55) 씨는 “요즘은 대리기사 공급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다. 대리업체에 수익 20%를 떼어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휴대전화을 뚫어져라 보던 이 씨는 반경 1㎞ 콜이 떴다는 휴대전화 진동이 울리는 순간 재빠르게 ‘수락’을 눌렀지만 이미 콜은 다른 기사에 넘어간 후였다. “아이고, 놓쳐버렸네”하는 탄식이 이어졌다.


[대리기사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동노동자의 뒷모습. 첫콜을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는 그나마 여유롭지만 재빨리 콜을 수락하기 위해선 마음만은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해야한다.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1인당 3000원 택시 셔틀= 오후 11시. 신논현역 인근 대리기사들은 이제야 영업 시간대를 맞이했다. 곧 막차가 끊길 시간이 다가오지만 대리기사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택틀 있고, 심야버스 있고 콜 업체 셔틀도 있는 데 무슨 걱정이에요”. 신논현역 인근에서 만난 김진용(56ㆍ가명) 씨는 막차 끊기는 게 대수냐며 웃었다.

택틀은 늦은 밤 손님을 내려주고 홀로 내린 대리기사들이 모여 1인당 3000원씩 내고 이용하는 택시를 말한다.

김 씨는 “둘이 타도 한 사람에 3000원이고, 넷이 타도 똑같은 3000원이다. 서울 택시가 경기도로 빠지면 손님 못 태우지 않냐. 그럴 때 그냥 가면 손해니까 대리기사들과 상부상조하는 거다. 대리끼리 서로 알아보고 택시 잡아서 함께 돌아오곤 한다”고 말했다. 새벽시간대 운행하는 심야 올빼미 버스도 대리 기사들의 든든한 발이 돼 준다. 덕분에 대리기사들은 다음날 새벽 1시께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강남으로 모여든다.

술집들이 밀집한 강남역 뒷골목에서 만난 이현진(41) 씨의 정체도 대리기사다. 앞서 만난 박진형 씨가 “작은 가방 메고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리다. 보조배터리 여러 개 들고 있으면 100%다”고 설명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이 씨가 쉼터가 아닌 길에 서 있는 이유는 잡은 콜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술 마시고 콜을 두 세 개 부르는 손님들이 있다. 콜을 잡았어도 남들보다 먼저 도착하지 않으면 뺏기는 것”이라며 “아예 콜이 잘 뜨는 곳에 나와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붙잡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골목을 내달려 사라졌다. 누군가의 운전대를 대신 잡기 위해서였다.
kace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