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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중기획 - 작은배려, 대한민국을 바꿉니다]“한두잔 쯤이야” “요앞인데”…아직도 운전대 손 가나요
건전한 회식문화 확산에도
술 강요하는 술자리도 여전
“그정도 괜찮다” 관대한 문화
음주운전땐 습관화 가능성 커


경기 파주의 한 중견 출판사에서 일하는 이모(35) 씨는 지난해 중순 아끼던 돈을 모아 자가용을 구입했다. 첫 차이다 보니 자가용을 애지중지하고 있지만, 이 씨는 정작 출근길에는 탈 기회가 없다. 회사 특성상 외부 술자리와 회식이 잦아 회사에 차를 두고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평소 술을 잘하지 못하는 이 씨는 구입 직후 차를 핑계로 술을 안 마셔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상사의 대답은 “내가 대리비 줄 테니까 그냥 마셔라”였다. 결국, 그날 이 씨는 억지로 술을 마셔야 했고, 난생처음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했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술을 강요하는 음주문화가 여전하다. 한 두 잔 쯤은 괜찮겠지하는 생각에 음주운전에 관대하기까지 하다. 사진은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는 경찰. [헤럴드경제DB]

대리운전을 이용해 집으로 가는 것도 부담이지만, 수도권 외곽이다 보니 대리운전을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 때도 잦았다. 하루는 회사 인근에서 대리운전을 구하지 못해 취한 상태로 인근 회사 주차장에 직접 차를 주차해놓고 집까지 택시를 타야만 했다. 이 씨는 “한 번 음주운전을 했더니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예 회사에 차를 끌고 오지 않고 있다”며 “사고라도 나면 어땠을지 지금도 아찔하다”고 했다.

술을 강요하지 않는 건전한 회식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강압적인 술자리가 존재하고, 이런 회식 후 음주운전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 탓에 도로 위 시한폭탄으로 변하곤 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주자 중 26.1%는 음주폐해의 원인으로 ‘거절해도 강요하는 음주 문화’를 꼽았다. 특히 여성 응답자 중 ‘강요하는 음주 문화’를 꼽은 비율은 29.4%에 달해 10명 중 3명은 부담스러운 회식 문화가 문제라고 답했다.

그나마 회식문화가 개선되면서 음주운전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감소세에 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2만9093건에 달하던 음주운전 교통사고 건수는 지난 2013년 2만6589건으로 크게 줄어든 데 이어 매년 감소해 지난 2016년에는 처음으로 2만건 밑인 1만9769건을 기록했다. 사망자 수도 지난 2012년에는 연간 815명에 달했지만, 지난 2016년에는 481명까지 줄었다.

그러나 일부 회식자리에서는 여전히 회식 후 음주운전이 ‘실수’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에 다니고 있는 권모(30) 씨는 “회식자리에서 상사들이 ‘짧은 거리는 단속도 없고 괜찮다’고 하며 술을 강제로 권할 때가 많다”며 “회사 분위기가 다른 곳보다 경직돼 있어 상사가 주는 술을 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별 경각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한 번 음주운전을 시작하면 경각심은 더 무뎌진다. 지난 19일 도로교통공단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음주운전의 경우 첫 음주운전 위반까지 평균 650일이 걸렸다. 그러나 그 이후 재위반까지 걸리는 시간은 536일(2회)과 420일(3회), 129일(4회)로 갈수록 단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 음주운전을 시작하면 상습 음주운전자로 바뀔 가능성도 크다는 의미다.

이처럼 음주운전이 여전히 쉽게 생각되고 있지만, 회식 후 음주운전은 엄연한 불법이다. 회식 후 음주로 사고가 나면 ‘업무상 재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강요로 인한 과음으로 귀가 중 다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례도 있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한 대법원 판단도 있다. 회식 자리에서의 음주는 업무의 연장으로 판단될 수 있지만, 그 이후 음주운전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회식 후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각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 관계자는 “회식 자리에서 차를 가져온 부하 직원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술을 먹었다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 하더라도 절대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된다”며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대리운전 등을 이용해 귀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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