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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고없는 범죄피해…도움 급한데” 보호기금 지원 ‘기다리다 하세월’
심의회 한달 1회뿐…제때 못써
1000억 쌓인 기금 절차상 문제
경찰 수사단계 활용 길 열려야

#1.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A씨는 정신 질환을 앓던 한 남성으로부터 피습을 당했다. 흉기로 얼굴에 큰 부상을 입은 A씨는 여러 차례 수술 끝에 결국 한 쪽 눈을 잃었다. 그 사이 수술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제적으로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버거웠던 A씨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범피 센터)를 통해 검찰청에 경제적 지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센터 측은 2017년의 피해자 지원 심의위원회가 종료됐다는 이유로 4개월 후인 이번 달에 다시 찾아오라는 설명을 할 뿐이었다. 당시 경제적 지원이 한시가 급했던 A씨는 할 수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급전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2. 지난해 1월 자가용을 타고 가던 트럭운전사 인 B씨는 골목길에서 한 취객의 흉기 공격에 허벅지와 옆구리를 크게 다쳤다. 한 달 이상의 입원치료가 필요했지만 B씨는 치료를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병원비가 부담스러운데다 시각장애인인 아내와 자녀 3명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B씨는 범피센터에 치료와 긴급생계비 지원을 신청하고 싶었지만 절차상 가해자가 검찰에 송치된 이후인 약 한 달 후에서야 400여 만원을 겨우 지원 받을 수 있었다.

범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절차 문제 탓에 피해자들의 신속한 지원이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가 지난 2005년부터 시행 중인 범죄피해자지원제도는 범죄 피해자의 신변보호부터 형사절차 관련 정보제공, 경제적ㆍ법률적 도움까지 지원한다. 경제적 지원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운용되는데 벌금 수납액의 6%으로 기금을 조성한다. 올해 책정된 범죄피해자보호기금 1011억원으로 기금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피해자들을 위한 긴급 구제비로 쓰이기보다는 지원단체 운용비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청이 운영하는 범피센터나 법무부가 직접 위탁운영하는 스마일센터에 쓰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피해자지원협회에 따르면 실제로 범죄피해구조금에 사용되는 기금은 100억원에 불과하다.

또한 피해자가 검찰청이나 범피센터에 긴급 지원을 신청하더라도 월 1회 열리는 심의회를 거쳐야만 해서 피해자가 절차를 기다리다 적시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자와의 접근성이 가장 높은 경찰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가용할 수 있는 재원도 매우 적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피해자보호기금 가운데 경찰에 배정된 금액은 12억원에 불과하다. 경찰은 이에 자체 예산 10억원을 더해 빠듯한 재원으로 긴급구조금은 물론, 강력범죄 현장정리나 신변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경찰의 몫은 1.2%에 불과하다”며 “경찰 수사단계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긴급 지원이 절실한데, 범피센터의 지원을 기다리다가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임시 거주지를 구하지 못해 보복범죄를 당하는 피해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보복범죄의 65.5%가 경찰수사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수사 단계에서 주거이전비 지원이 절실하다는 해석이다. 반면 검찰청에 배정된 신변보호 사업비 3억원은 매년 1억1000만원의 불용액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 단계에서부터 피해자에게 치료비, 주거이전비, 긴급 생계비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 2016년 “경찰은 범죄 피해자를 가장 먼저 접촉하는 형사사법기관으로 피해자를 위한 긴급구조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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