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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사람의 사과
사과는 피해자에게 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은 피해자와 사과를 받는 사람이 다르다. 어색한 사과와 어색한 감사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2박3일간 국빈 방문한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베트남 쩐 다이 꽝 국가주석을 만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꽝 주석은 “한국 정부의 진심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했다. 겉으로만 보면 문 대통령이 사과를 했고, 꽝 주석이 사과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무엇이 어떻게?

문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전 베트남 정부 측에 과거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하겠다고 요청했다. 즉시 베트남 공산당 전체회의가 소집됐다. 긴급 사안으로 다뤄졌다. 수시간에 걸친 공산당 회의 결론은 ‘사과는 필요없다’였다. 거부 표시였다. 순방 직전 청와대 관계자가 ‘이전보다 진전된 베트남에 대한 사과는 없을 것’이란 발언도 그래서 나왔다. 사과를 하겠다는데 사과를 받지 않겠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자가 찾은 원인은 서두에 밝힌 것이다. 피해자와 사과를 받는 사람이 달랐다. 베트남 꽝 주석은 베트남 북부 닌빈 성 출신이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지역은 베트남 중부 4성에서였다. 소위 현 베트남 집권 세력과 피해지역민들이 다른 것이다. 여기에 베트남 중부 지역은 여전히 낙후 지역이다. 중부 지역 출신들은 권부 입성이 어렵다. 베트남 집권 세력이 문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필요없다. 미래나 생각하자’고 답하는 이유다. 경제 성장이 바쁜데, 나와 관계없는 일로 자꾸 미안하다고 하니 난감할 수도 있겠다.

또 하노이 사람들은 승전국 자부심이 대단하다. 대중국, 대프랑스, 대미국 전쟁에서 모두 이겼다. 그래서 자국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가해국의 ‘사과’로 다시 도드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적어도 베트남 정부는 그렇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다르다.

‘아가야 이 마을을 기억하거라. 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 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넌 커서도 이 말을 꼭 기억하거라’라는 자장가를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베트남 빈호아 마을이 있고,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거라’는 증오비가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역사적 사실이다. 피해자들은 문자 표현대로 ‘만대’를 기억할 것이다.

한국에도 유사사례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과 맺은 ‘1965년의 한일협정’이다. 여전히 한국의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박정희 정부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치 못한 채 양국의 전후배상을 일괄적으로 이뤄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미 다 끝난일’이라고 얘기하는 것에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유독 ‘사람’을 중시한다. 대선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였고, 개헌안엔 ‘국민’ 대신 ‘사람’을 썼다. 문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 중이라 하지 못한 사과를 기억했다가 퇴임 후에 하는 방안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수천명의, 집계에 따라선 3만명의 베트남 ’사람’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다(羞惡之心 義之端也).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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