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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발달장애인 부모 209명 ‘눈물의 삭발식’
-발달장애 부모 3000여명 참석…209명 삭발 진행
-“삭발로 세상 바꿀 수 있다면”…국가 책임제 촉구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너를 위해서 머리를 밀지만 너는 결코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 부모 209명의 삭발식이 열렸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420 장애인 차별철폐 공동투쟁단’ 등 주최한 이 행사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진행됐다. 이날 집회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학부모, 관련 종사자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 부모 209명의 삭발식이 열렸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삭발식을 앞둔 부모들은 초조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폐 2급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전날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지켜보는 이들도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울산서 온 김옥진 (59) 씨는 “전에 아이 학교 입학을 위해서 삭발식을 했었는데 그때 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며 “아직도 발달장애를 위한 제도가 제자리 걸음인 게 속상하다. 아무리 서둘러도, 제도는 아이의 성장을 따라잡지 못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삭발식이 진행되자 발달장애 학부모 200여명은 흰 의자에 앉아 가운을 둘렀다. 미용사가 가위질을 시작하자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 미용사는 삭발을 하는 부모를 머리카락을 자르다 말고 부둥켜 안고 울었다. 부모들은두눈을 질끈 감았다. 

[사진=발달장애 국가 책임제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는 한 부모의 모습.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머리카락과 함께 부모들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스물세살 지적장애와 희귀질환을 갖고 있는 딸을 키우고 있는 김유선 씨는 “아이의 웃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어서,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들어주기 위해 삭발하러 나왔다”며 “이 머리는 잘려나갔지만 우리 아이들 사는 세상은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삭발이 진행되는 동안 한 켠에선 전국의 각 지부 별로 나온 학부모들의 결의문 낭독이 이어졌다. 한 학부모는 “우리가 남이 갖지 못한 것을 욕심 냈는가, 우리가 다른 이 제쳐두고 내 새끼만 앞세우는 이기심을 부렸는가. 우리는 다만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티게 해달라고, 어미 없는 세상에서도 내 아이가 어미 있는 것처럼 살게 해달라고 호소했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사진=광주에서 온 김유선 씨는 “이 머리는 잘려나갔지만 우리 아이들 사는 세상은 더 행복하고 아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경북에서 온 백영미 씨는 “발달장애 아이를 둔 친구가 최근에 암으로 죽었다”며 “남겨진 아이는 어떻게 사느냐”며 흐느꼈다.

이 자리에 함께 온 발달장애 자녀도 삭발하는 부모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전민우(19) 씨는 삭발하는 어머니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울부짖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 김정숙 씨는 “아이가 삭발이라는 것을 모를 줄 알고 말도 안 했는데, 아이는 엄마가 머리를 자른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며 “아직도 이렇게 아이에 대해서 몰랐나 싶다”고 애써 웃음을 보였다. 

[사진=삭발식에 참여한 209명의 학부모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부모들은 발달장애 아이들이 사회와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모들은 정부에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실현 ▷발달장애인 낮 시간 활동 보장을 위한 주간활동서비스 제도화 ▷중증장애인 직업재활지원 사업 확대 ▷장애인 가족지원 체계 구축 ▷발달장애인 자조단체 운영 활성화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은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은 권리가 있다”며 “장애가 있든 또 어떠한 장애가 있든 사람은 다 똑같다. 이세상에 태어나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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