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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엄마 깎지마!“ ”네가 행복했으면…” 발달장애아 부모 209명 ‘눈물의 삭발’
-발달장애 부모 3000여명 참석…209명 삭발 진행
-직업재활 지원 확대 등 국가 책임제 실현 촉구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떨려요. 청심환 먹고 잤는데도 잠이 안 오더라고요.”

삭발식을 앞두고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현우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 손을 잡으니 땀으로 축축했다. 현우는 오늘 몸이 안 좋아 나오지 못했다. 삭발 의자에 앉은 어머니는 봄 햇살이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소풍을 하면 좋을 날씨였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 부모 209명의 삭발식이 열렸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420 장애인 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학부모, 관련 종사자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 부모 209명의 삭발식이 열렸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200명이 넘는 학부모들이 삭발을 감행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발달 장애인 아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살게 해달라는 것. 한 어머니는 “내 아이가 어미 없는 세상에서도, 어미가 있는 것처럼 살게 해주기 위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삭발식을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학부모들은 흰색 미용 가운을 목에 둘렀다. 흰 가운이 반사판처럼 현우 어머니의 얼굴을 비추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미용사가 가위질을 시작하자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 미용사는 삭발을 하는 부모를 머리카락을 자르다 말고 부둥켜안고 울었다. 부모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카락과 함께 부모들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스피커에선 “우리는 왜 벚꽃과 목련과 산수유와 진달래와 개나리가 화창한 이 봄날의 들판에 이렇게 무참한 심정으로 앉아 있는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어미와 아비가 전국에서 달려와 이 눈부신 봄날 침묵의 투사로 벌판에 서있는가” 절규가 터져 나왔다. 봄바람에 잘린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광주에서 온 김유선 씨는 “이 머리는 잘려나갔지만 우리 아이들 사는 세상은 더 행복하고 아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스물세살 지적장애와 희귀질환을 갖고 있는 딸을 키우고 있는 김유선 씨도 머리를 밀었다. 그는 “이 머리는 잘려나갔지만 우리 아이들 사는 세상은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삭발이 진행되는 동안 한 켠에선 전국의 각 지부 별로 나온 발달장애 학부모들의 결의문 낭독이 이어졌다. 부모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왜 더 정부와 대화해보지 않고 왜 좀 더 기다려보지 않고 머리부터 미는 거냐고 누군가 물었어요. 그동안 기다렸고 앞으로도 대화하고 기다릴 것이지만, 우리는 대화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뜨겁다고, 이렇게 절박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거예요.”

자리에 함께 온 발달장애 자녀들도 삭발하는 부모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전민우(19) 씨는 삭발하는 어머니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울부짖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 주변에서 떼어내고 아무리 달래 봐도 그는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고함을 쳤다

삭발식에 참여한 209명의 학부모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그동안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인간답게 사는 삶’은 사치였다. 아이에게 엄마는 유일한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장애아라는 이유로 지역사회에서 고립된 아이를 홀로 지키느라 엄마들도 함께 고립돼 갔다. 정부가 바뀌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올해 발달장애인 예산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90억원보다 적은 85억원에 불과하다.

부모들은 발달장애 아이들이 사회와 더불어 살 수 있도록 ‘국가 책임제’가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는 아이들이 밖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다양한 주간활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엄마 없이도 혼자 살 수 있도록 직업재활지원을 확대하고, 24시간 아이와 함께 붙어있느라 화장실조차 맘 편히 못 가는 부모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게 ‘장애인 가족지원 체계’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그저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한 어머니는 “머리를 민 200여명의 어미, 아비가 돌아다닌다면 세상 사람들은 한번쯤 돌아보고 상기해주겠지요. 물어봐 주겠지요”라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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