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홍대·이태원은 ‘흉물낙서’ 전시장
질 낮고 선정적 페인트칠 범벅
건전한 ‘그래피티’ 찾기 힘들어
새벽시간 ‘휙’ 뿌려놓고 도망쳐
표현의 자유? 재산권 침해행위!

도 넘은 낙서와 ‘그래피티’(길거리 그림) 행위에 서울 번화가가 몸살을 앓고 있다.

홍대와 이태원 등의 놀이터, 화장실과 같은 공공 시설물은 페인트의 폭격을 맞은 지 오래다. 최근에는 일대 주택가와 민간 영업시설로 피해가 번지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3일 오후 2시 찾은 용산구 이태원동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근처는 낙서가 없는 시설물을 찾기 어려웠다. 작은 휴지통과 전봇대마저도 페인트 등에 범벅이 된 상태였다. 낙서는 해석하기 힘든 언어, 알아볼 수 없는 그림 등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단순 낙서가 아닌 예술 작품임을 표방하는 그래피티를 염두한 문구와 그림도 있었지만, 열에 아홉은 질이 낮고 선정적이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근처 민간 영업시설 벽면이 낙서와 ‘그래피티’로 덮여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이곳에서 만난 시민 대부분은 깊은 불쾌감을 내비쳤다. 근처 해방촌에 사는 직장인 유준민(33) 씨는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흉물’로 불러도 될만큼 정도가 심해졌다”며 “보기만 해도 속이 답답해질 지경”이라고 했다. 판매대에 ‘테러’를 당한 상인 이모(41) 씨는 “1~2년 전부터 서로 경쟁이 붙은 듯 낙서에 또 다른 낙서가 덧칠되는 등 상황이 많았다”며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난도질을 한 뒤 도망가버리니 밤을 꼬박 새지 않는 한 막을 방도도 없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찾은 마포구 동교동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도 상황은 비슷했다. 공사장과 경로당은 물론 민간 영업시설까지 페인트칠은 거침 없었다. 대학생 유인욱(22) 씨는 “곳곳에서 역한 페인트 냄새가 느껴질 정도”라며 “낙서만 없어도 근방이 훨씬 깔끔해보일 것”이라고 했다.셀 수 없이 낙서를 지우다 포기했다는 상인 임모(55) 씨는 “누군가는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엄연한 재산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 민간 영업시설 벽면이 낙서와 ‘그래피티’로 범벅이 돼 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서울시와 자치구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공공 시설물을 관리하고 시민 불편사항을 받는 입장으로, 주민ㆍ상인과 관광객 등의 관련 민원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남의 건물 벽면과 공공 시설물 등에 허가없이 낙서를 하면 그 정도에 따라 재물손괴죄 등으로 처벌 받는다. 이에 따라 적발될시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시와 자치구, 경찰 모두 범인을 잡는 데 힘든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인적 드문 늦은 밤에 그려놓고 갈 때가 많아 신원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폐쇄회로(CC)TV가 있다 해도 현장 목격자가 없어 식별이 제한되고, 애초 ‘CCTV 사각지대’에서 이런 일이 생길 때도 많아 한계가 있다는 것이 두 기관의 설명이다.

자치구 관계자는 “이런 행위를 하는 이들 중에는 외국인도 상당수”라며 “신원 파악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낙서와 그래피티 행위의 특성상 무조건적인 규제보다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손수호 인덕대 도시환경디자인 교수는 “특히 그래피티는 ‘저항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규제를 할수록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며 “시민 안전과 도시 미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존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