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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소에도 문란” 주장…초등생 의붓딸 성추행 의부 실형
재판과정서 2차 피해 ‘고통’ 안겨
전문가 “엄격한 예방지침 마련돼야”


초등학생 의붓딸을 수차례 성추행해온 60대가 결국 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았다. 용기를 내 어머니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며 딸은 성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2년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의붓아버지의 2차 가해에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지난 2013년 5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A 양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의붓아버지인 B(61) 씨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처음 고백했다. 당시 A 양은 “자는 사이에 의붓아버지가 방에 찾아와 옷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자신을 추행했다”며 “거실에서 큰 소리로 음란 동영상을 틀어놓고 시청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딸의 고백을 들은 A 양의 친모는 주변의 설득으로 지난 2016년 경찰에 딸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경찰 수사 결과, B 씨는 지난 2013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잠을 자는 A 양의 몸을 더듬고 음란 동영상을 아이 앞에서 큰 소리로 보는 등의 성폭력을 반복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B 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A 양의 고통은 재판 과정에서 더 심해졌다. B 씨 측이 재판 내내 “A 양이 평소 문란한 생활을 해왔다”며 “친모와 짜고 모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B 씨 측은 재판부에 짧은 옷을 입은 A 양의 사진을 제출했고, A 양이 초등학생임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등 불건전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계속되는 2차 가해에 A 양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자 1심 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피고인은 짧은 옷을 입으면 초등학생을 성추행해도 되냐”며 피고 측을 다그쳤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고, 수사기관의 증거들을 종합했을 때 성추행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징역 5년 형을 선고했다.

법정에서의 2차 가해는 B 씨가 항소하면서 상급심까지 계속됐다. B 씨측은 “친모가 돈을 노리고 A 양에게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라고 사주했다”고 주장했지만,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12부(부장 홍동기)는 지난 1월 “ 피해자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할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저버리고 12세에 불과한 피해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아 범행을 저질렀다”며 B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오히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서부터 범행을 단순히 부인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모친을 위협하고 피해자가 허위진술을 하는 것처럼 주장해 피해자에게 2차적 피해를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사건 후 5년이 넘어서야 A 양의 고통도 끝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상대 측 변호인 등에 의한 인신공격 등이 관행처럼 남아 있어 법정에서의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엄격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아직 성범죄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에게 모욕을 줘 스스로 재판을 포기하게끔 하는 방식이 통용되고 있다”며 “법원이나 검찰에 엄격한 2차 가해 방지 지침이 있는 것처럼, 변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엄격한 2차 가해 예방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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