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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벼락·욕설 ‘갑질’ 직장에선 일상”
‘사용자’만 법적 처벌 대상
가해자 과장·팀장급 많아
‘민사로 풀 개인간 일’ 방치
피해자 문제해결 쉽지않아


“직장에서 상사에게 맞았는데 갑질이 아니래요”. 직장인 A씨는 재작년 회사 내에서 욕설하며 다가와 몸을 부딪힌 상사에 밀려 넘어져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사무실 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목격자도 있었지만 사측은 간단한 경위서 작성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해당 사건은 두 직원이 민사로 해결할 일이며 회사가 두 사람의 일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A 씨는 “그날 이후 실장은 틈만나면 욕하며 퇴사를 종용했지만 ‘근로자’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법이 그렇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의혹 이후 참아왔던 직장 내 폭력을 폭로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는 직장 내 갑질 행위와 행위자를 포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기준법이 엄격하게 금지하는 직장 내 폭행은 그 대상인 ‘사용자’의 정의가 사장ㆍ상무 등으로 협소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물리력을 이용해 구타하거나 기물을 던지는 등 폭행을 시도한 경우를 해당법이 금지하는 폭행으로 본다. 이때의 ‘사용자’에 직계 상사가 포함되는 경우는 드물다. 회사 직급 체계별로 차이는 있지만 사장ㆍ상무 등을 제외하고 노동조합 가입이 가능한 팀장급 등은 사용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아닌 직장상사가 폭행을 가한 경우는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돼 피해자의 동의 없이는 처벌이 불가능하고 수위도 낮다.

문제는 이러한 근로기준법의 허점을 악용한 갑질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직장에서 폭행을 가한 가해자는 10명 중 6명(66.6%)이 과장, 대리, 팀장 등 상사였다. 사장과 임원 등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는 상사가 폭행한 경우는 10명 중 2명(21.4%)에 불과했다. 대한항공 논란처럼 사용자에 해당하는 상사 뿐만 아니라 그보다 낮은 직급의 직계 상사에게 당하는 폭행이 더 많다는 의미다.

업무 현장에서 폭행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준폭행은 아예 근로기준법 규정에서 빠져있다는 점도 문제다. 준폭행은 상대를 때리지 않고 욕설이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행위에 해당한다. 물컵을 밀치는 행위 역시 준폭행에 해당할 수 있어 대한항공 측은 ‘물컵을 밀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 규정에선 빠진 준폭행이 현장에서 특수ㆍ단순폭행만큼 빈번하게 발생하는 갑질 행위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들어온 기명 제보를 분석한 결과 준폭행은 10건 중 3건(33.3%) 꼴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역시 권력과 위계 관계를 배제한 폭행 정도만 따지는 방식으로는 직장 내 갑질 문화를 근절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근로기준법이 오히려 상사들의 갑질 가이드라인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상을 지적했다. 박 집행위원은 “‘X대가리’라고 욕하고 서류를 집어던지는 정도로는 근로기준법에 해당되지 않아 모욕죄 등으로 우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 쉽게 행동하는 상사도 많다”며 “권력간 위계에 의한 폭력 엄중히 다루려 만든 법 취지와 배치되는 허점이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 직장 내 성폭력에 사용자의 책임을 묻듯 직장 갑질 폭력도 개인 간의 일로 넘길 것이 아니라 회사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조 전무의 물벼락 갑질 논란을 수사 중인 서울 강서경찰서는 “광고대행사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를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현재까지 회의장에 있던 2명 외에 다른 진술이 나오지 않아 상습폭행 혐의 적용은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조 전무를 소환해 엇갈리는 진술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다. 김유진 기자/kac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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