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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탐색]“운동선수는 성추행 경험 많지?”…여전한 직장 내 성폭력 2차 피해
-성추행이 성희롱으로 둔갑…가해자 ‘봐주기 의혹‘
-사건 축소ㆍ부당 인사 협박…피해자는 두 번 고통
-“2차 피해 막을 수 있는 강제 규정 만들어야”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피해자들의 용기로 직장 내 성폭력 고발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사건 축소에만 집중하는 등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끊임없다.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던 최민경(36) 선수는 지난 17일 자신의 상사였던 대한체육회 A 부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해 7월 회식 자리에서 동성인 A 부장이 원하지 않은 신체접촉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당시 자리에 있던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사진=123rf]

지난해 12월,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협회에 진정서가 접수되며 진상 조사가 시작됐다. 당시 피해를 입었던 직원 4명이 경위서를 작성하기 위해 협회 내부에 있는 성희롱 고충처리위원회에 출석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A 부장은 정상적으로 근무했다. 이들은 A 부장이 지난 2월 대기 발령을 받을 때까지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만 했다.

조사가 시작돼도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야 하는 담당자들은 오히려 “운동선수는 이런 경험을 많이 하지 않느냐”며 피해자들을 회유했다. 승진과 지방 근무를 언급하는 등 사실상 강요에 가까운 발언도 있었다.

조사 결과도 문제였다. 강제적인 신체접촉이 있었지만, 정작 조사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성희롱’으로 결론지어졌기 때문이다. 가해자인 A 부장은 성희롱으로 사건이 결론지어진 직후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징계 절차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피해자들이 성추행 사건이 성희롱으로 결론난 것에 대해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 씨는 “협회가 조사 결과 성희롱으로 결론지어졌다는 내용을 당사자들에게 통보했다”며 “항의했지만, ‘추행이면 경찰에 신고하라’는 식의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최 씨는 A 부장을 직접 경찰에 고소해야만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송파경찰서는 현재 최 씨의 고소장을 접수해 강제 추행 혐의로 A 부장에 대한 피고소인 조사를 앞두고 있다.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결국 2차 피해로 이어지는 직장 내 성폭력 실태는 비단 대한체육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최근 발표한 ‘2017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 상담 통계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피해 상담자 168명 중 18.0%가 “직장으로부터 성폭력 2차 피해를 받았다”고 답했다. 가해자 주변인(25.1%) 다음으로 가장 비율이 높았다. 대부분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2차 피해 방지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경우다. 최 씨의 경우처럼 사건을 축소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입힌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성폭력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강제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원 노무사는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 회사는 문제 해결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직장에서 쫓아내는 등 ‘조용한 처리’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당한 징계나 인사를 방지할 수 있는 강제적 2차 피해 예방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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