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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말’에는 힘이 있다
[헤럴드경제 TAPAS=구민정 기자] 3월 마지막 주. 기획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게 달력이었다. 유난히 역사적 기념일이 많았던 4월. 기념일들을 한번에 엮을 주제를 더듬다 찾은 단어가 ‘기억’이었다. 팀에선 주제별 다크투어 기사들과 세월호 기사들을 써내며 4월을 보냈다.



4월의 마지막. 우연히 알게 됐고, 세월호 참사 생존자가 공연한다고 해서 건질 게 있지 않을까 해서 갔던 그 공연. 그런데 그곳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고, 4월과 좋은 작별인사를 나눠야겠다고 꼭 다짐했다. 낭독&토크 ‘세월호, 이제 시작이다!’이었다.



낭독&토크 ‘세월호, 이제 시작이다!’




길다란 흰 천 위로 이름들이 쏟아진다.

‘1반’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로 시작된 이름은, ‘함께 타신 분들’ 최승호 최창복 한금희 현윤지를 지나 ‘선원분들’ 김문익 박지영 안현영 양대홍 이묘희 정현선, ‘아르바이트 분들’ 구춘미 김기웅 방현수 이현우까지 이어졌다. 305명의 이름이 모두 나오고 나서야 멜로디가 그쳤다.

윤민석이 만든 ‘이름을 불러주세요’다.



노래가 끝나고 고요함을 깬 건 또 다른 노래가 아니었다. 말이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2014년 4월 16일 그날,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많은 사람들의 탈출을 돕고 마지막에 탈출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날 난, 수많은 생명을 등지고 탈출한 살인방조자다.”


낭독&토크 ‘세월호, 이제 시작이다!’



텅 빈 무대를 말이 계속 채워나갔다.



“나를 도와 선내에서 탈출을 돕던 학생이 마지막으로 탈출하면서 내게 했던 말. ‘아직 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요’. ‘왜’냐고 묻자 그 학생이 말했다. ‘손이 닿지 않고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해요’. 그 말을 듣고 불과 2m 거리의 복도로 뛰어내려들어갔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소리쳤지만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 다음 복도는 5~7m 거리. 사고 전이라면 고작 열걸음정도밖에 되지 않았겠지만 당시엔 2, 3층 건물 높이의 낭떠러지였다. --- 그저 바라만 봐야했다. 무얼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이 좋은지 떠올리지도 못했다. --- 그렇기 때문에 난, 살인방조자다”






참사, 특별법, 특조위, 주기, 추모식, 선실. ‘글’로만 대해온 그때 그일. 머릿속에 머문 팩트들이었고, 기사를 채울 단어들일 뿐이었다.

글이 아닌 ‘말’로 접한 그일은 더이상 기삿감, 일거리가 아니었다. 9반 정다혜 양의 ‘엑소음반을 사주시던 멋진 아빠’가, 10반 김다영 양의 ‘책장엔 네가 꿈꾸면서 살았던 흔적이 가득’한 모습이 이야기가 되어 관객들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말에는 힘이 있다.







“조금더 직접적인 전달을 하고 싶었습니다. ‘말’로 하는 표현을 내려놓진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기에는 ‘감정이 이입 된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낭독공연을 준비한 사회예술행동단 버드나무의 유희 단장의 말이다.



“저희는 기존에 있는 글만 낭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작성한 글도 낭독합니다. 지난번 공연 때는 직접 작성한 글의 비중이 더 높았고, 이번에는 거의 반반인 것 같네요. 이번 공연의 구상의 중점은 주제인 ‘세월호, 이제 시작이다!’라는 한 문장의 전달과 4주기의 시점이니 4년이라는 기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 시간이 지난 그리움, 그렇게 또 흐른 세상에 대한 분노, 여전히 그 아픈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마음으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생존자 김성묵 씨에겐 말하는 것조차 쉽진 않았다.

낭독 공연 연습을 하면서도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 그 얼굴들, 그 모습들까지… 수없이 되뇌이고 떠올리며 그 때 생각하지 못한 것들, 그때 하지 못한 것들, 그때 외치지 못한 것들이 후회”돼 괴롭기만 했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했다. 그는 그날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을 하기로 했다.



“낭독이란 매개체가 그나마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외침이나 울부짖음이 아닌 ‘울림’으로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생존자, 유가족, 미수습가족 이런 표현보다 ‘피해자’로서 온전한 진심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korean.g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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