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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조현용 경희대 교수]말 잘 듣는 자식, 말 안 듣는 부모
사람의 귀는 청각 기관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귀의 모양으로 장수를 점치기도 하고, ‘부처님 귀’라고 칭찬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귀는 듣는 역할을 합니다. 귀로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논어의 ‘이순(耳順)’이라는 표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순은 귀가 순해져서 들으면 도리를 이해하는 나이입니다. 공자는 60세을 이순이라고 하였는데, 어찌 보면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예순 살이나 되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우리말에서 ‘말을 듣다’라는 말은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단순히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까지 의미하기도 합니다. 귀로 듣되 이해는 못하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못 들은 게 됩니다.

‘말을 듣는다’는 말은 명령이나 요청 등에 따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말을 잘 듣는다고 하면 순종한다는 의미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로 나이나 권력이 위인 사람의 말을 아랫사람이 들을 때 씁니다.

말을 듣는 대표적인 관계가 부모와 자식 간입니다. 당연히 부모의 말씀을 자식이 잘 들어야겠죠. 말 안 듣는 아이만큼 속상하는 일이 없습니다. 참 말을 안 듣습니다. 이거 하라고 하면 저거 하고, 저거 하라고 하면 이걸 합니다. 물론 자라는 과정이니 믿고 지켜봐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도 해 봐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겁니다.

때로는 말 안 듣는 일도 필요합니다. 부모가 때때로 자식에게 져 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자식은 말을 잘 듣게 됩니다. 부모의 마음이 안심이 되고 편안해 집니다. 혼자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자식이 너무 부모 말씀을 잘 듣는 것도 문제입니다. 바쁘니까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전화가 뜸해 집니다. 난 용돈같은 건 필요 없다고, 늙어서 돈 쓸 때도 없다고 말하면 자식은 금방 마음을 접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 푹 쉬라고 하면 그야말로 꼼짝도 안 합니다. 종종 어른이 되면 부모의 말씀을 거역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종종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더 자주 전화 드리고, 비싸지 않더라도 선물도 자주 삽니다. 그러면 부모님께서는 ‘하지 말라니까’라고 하시면서 좋아하십니다.

반면 부모님은 점점 말을 안 듣습니다. 고집이 세집니다. “마트에서 사드시지 왜 상추며 깻잎을 집에 심으시냐”고 해도 꼭 한쪽에 텃밭을 만드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삼겹살에는 부모님이 기른 상추가 맛있기는 합니다. 추운데 나오시지 말라고 해도 우리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문 밖에서 손을 흔드십니다. 참 말을 안 들으십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말 안 듣는다고 나무라시더니 이제는 당신들께서 더 합니다.

저는 “부모님 말씀을 듣지 말라”고 말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다가도 제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듣고서는 수긍을 합니다. 이맘때면 부모님 말을 안 듣겠다고 결심을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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