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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에만 혜성처럼 왔다 사라진 ‘원 히트’ 스타들

  • 기사입력 2018-06-1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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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노ㆍ체리셰프, 2018 월드컵 새 스타
스킬라치ㆍ만시즈, 월드컵만 반짝스타
만시즈 피겨 전업…스킬라치 J리그 은퇴
‘지속가능한’ 스타 되게 자기관리 잘 해야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혁희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깜짝스타가 탄생했다. 바로 독일을 격침시킨 멕시코의 이르빙 로사노(23ㆍ아인트호벤)와 후보로 있다가 러시아 공격의 활기를 불어넣는 추가골을 성공한 데니스 체리셰프(28ㆍ비야레알), 환상적 프리킥골로 세르비아에 첫승을 안긴 AS로마의 노장 수비수 알렉산다르 콜라로프(33) 등이다.

이제 조별리그 첫 경기가 끝났을 뿐이므로 앞으로도 깜짝스타는 계속 나올 것이다.

월드컵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스타는 가끔 혜성의 속도만큼 빨리 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한 곡 만 흥행시킨 음악계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같은 스타이다.

1990년 스킬라치와 2002년 만시즈의 명멸은 월드컵 스타가 된 우쭐함을 잊고 자기관리를 통해 지속가능한 스타가 되도록 매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이탈리아 월드컵만을 위해 태어난 사나이라 불리는 살바토레 스킬라치. [사진=피파 홈페이지]

▶‘로시의 재림’ 같았던 스킬라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여한 아주리 군단(이탈리아 대표팀 애칭)의 공격진은 면면이 화려했다. ‘말총머리’ 로베르토 바조, 로베르토 만치니, 지안루카 비알리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었다.

쟁쟁한 공격진 중 낯선 이름이 스킬라치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2부 리그인 세리에B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유벤투스에 입단, 대표팀도 월드컵 개막 1년 전에야 간신히 데뷔한 무명선수였다.

월드컵에 참가한 스킬라치는 조별리그 1차전 오스트리아 전에서 당연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0-0으로 비기고 있던 상황에서 교체로 투입, 2분도 채 되지 않아 득점하며 조국의 승리를 견인했다.

이후 아주리 군단에서 스킬라치의 입지는 급상승했다. 4강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하고, 잉글랜드와의 3·4위전까지 7경기에서 6골을 득점했다. 이탈리아의 득점 대부분을 스킬라치가 터트렸다.

이런 맹활약에 힘입어 스킬라치는 이탈리아가 대회 3위에 그쳤음에도 득점왕, 대회 MVP, 대회 올스타팀을 모두 석권했다. 당연히 이탈리아 전역은 82년 월드컵 득점왕이었던 파울로 로시의 재림이라며 스킬라치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스킬라치는 월드컵 이후 귀신같이 몰락했다. 소속팀 유벤투스에서 극심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월드컵에서 보였던 절정의 골 감각은 온데간데 없었다. 인터밀란으로 적을 옮긴 스킬라치는 인터밀란에서도 실패, 일본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로 쫓기듯 이적했다. 영영 폼을 되찾지 못한 스킬라치는 결국 J리그에서 은퇴했다.

‘레인보우 플립 마스터’에서 피겨 선수로 전직한 일한 만시즈. [사진=피파 홈페이지]

▶2002 한국전 멀티골, 일한 만시즈= 일한 만시즈는 2002 한일 월드컵 3·4위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두 골을 터트린 선수다. 앞서 8강에서도 세네갈을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월드컵에서 만시즈의 활약은 눈부셨다. 대한민국과 더불어 이변의 주인공이었던 터키의 공격수로 출전했는데, 직접적인 득점보다는 환상적인 개인기로 세계의 팬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의 퍼포먼스는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는 물론, 아직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풀백 중 하나로 꼽히는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상대로 소위 ‘사포’라 불리는 레인보우 플립 개인기를 성공시켰다. 그 개인기는 한국과의 경기에서 김태영(현 수원 삼성 코치)을 상대로도 다시 한 번 선보였다.

빼어난 외모로, 데이비드 베컴과 더불어 여성 팬들을 설레게 하는 양대 산맥이기도 했던 만시즈는 2002년에만 반짝였다. 01-02시즌 소속팀이었던 터키 리그 삼순스포르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고질병이었던 무릎 부상이 재발했다.

유럽에서 활약을 이어가기 힘들어진 만시즈는 새로운 리그를 찾아 나선다. 행선지는 일본이었다. 한일 월드컵에서 보였던 외모와 실력 덕분에 일본엔 여전히 만시즈의 여성 팬들이 가득했다. 만시즈는 J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했지만, 무릎 부상이 심해져 고작 한 경기에 출전했고, 이후 유럽으로 돌아왔으나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6년 은퇴했다.

그렇게 잊혔던 만시즈는 2009년, 뜻밖의 종목에서 나타났다. 잔디 위의 미남 선수였던 만시즈가 빙판 위에 나타난 것이다. 연인이자 베테랑 피겨 선수인 올가 베스탄디고바와 짝을 이뤄 피겨 스케이팅 페어 종목 선수로 데뷔했다.

비록 2014 소치 동계올림픽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엔 실패했지만, 터키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필드 위에서 레인보우 플립을 수차례 선보였던 만시즈는 이제 빙판 위에서 무지개를 그리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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