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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NO”라고 말할 수 없는 관계도 있다

  • 기사입력 2018-08-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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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연합뉴스]
“‘NO’라고 할 수 있었는데 안 했다면 후회가 되겠지만, 그때 대놓고 저항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A는 내가 본 중 손꼽게 씩씩하고 활동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그날 그 순간’엔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회식 자리에서 낯선 손길에 당황하면서도 그저 자세를 바꾸고 몸을 꼬는 게 A의 최선이었다.

“일단 평소 우러러보던 상사가 설마 내게 그런 일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그리고 용기 내서 지적했는데 자기는 안 했다고 부인하면 조직은 당연히 말단인 나보다는 그 사람의 주장을 우선시할 거란 직감이 바로 들었고….”

A가 그 순간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입은 피해를 피해가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 법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ㆍ간음’을 일반 성범죄와 별도로 규정하는 이유 또한 ‘No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부적절한 행위를 방지하고 처벌할 필요가 있어서라고 본다. 관련 판례에서도 범죄 구성 요건에서 피해자가 확고하게 거부했는지는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의 1심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는 선고문과 판결문에서 ‘노 민스 노(No means no)’ 원칙을 언급했다. 재판부가 상대의 동의없는 강간을 처벌할 수 있는 입법의 공백을 지적한 덕분에 ‘비동의 간음죄’ 개정 논의도 활발해진 건 일견 반가운 일이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행 강간죄의 협소한 인정범위를 확대하자는 취지에서는 유효하다. 그러나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나타내기 어려운 권력의 상하 관계에서 일어난 성범죄를 처벌할지 판단하는 기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성범죄를 전담하는 한 국선 변호사는 “피해자가 약하게나마 거부 의사를 나타낸 사실,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재판부가 무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모순을 면피하기 위해 ‘노민스노’를 언급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판결문을 정독하니 재판부가 이 사건에 어울리지 않는 입법을 얘기한 배경이 이해가 됐다. 권력형 성범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학 관계를 충분히 고심하지 않은 부분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피해자 김지은 씨가 동료 운전비서의 성추행을 지적한 일화를 들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인지한 여성’이므로 여리고 소심해서 안 전 지사의 위력에 제압당했다는 주장을 배척하는 대목에선 헛웃음이 났다. 특유의 성격과 무관하게 임면권을 가진 유력 대통령 후보, 조직에서 동급이거나 더 낮은 동료에게서 받은 침해에 대응하는 방법이 비슷하기가 더 어려운 일이다. 누구라도 직장 상사나 군대 선임이 폭행할 때, 친구가 때릴 때처럼 반응할 수 없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없는 상식 아닌가.

A에게 다시 물었다. 그게 상사가 아니라 동기나 가까운 선배였다면? “바로 욕하거나 손 뿌리치지. 장난하나.” 여느 때처럼 씩씩한 답이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주체성은 주어진 권리일 뿐, 개인이 어느 상황에서나 고정 불변하게 갖는 성격적 특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피해자가 주체성을 가진 여성이라면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사회적ㆍ정치적 위력을 인정했다. 피해자가 사회적 위치와 경제권을 포기해서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우선 발휘해야 했다는 요구에서 정조를 목숨보다 귀히 여겼던 구시대적 관념까지 얼핏 오버랩된다.

항소심 국면으로 접어든 안 전 지사 사건은 어떤 결론이 나오든 위력에 의한 성범죄 판례에서 중요한 표지로 남을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만큼 쟁점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2심과 3심 판결을 함부로 예단하거나 전망하기는 어렵다. 다만 바라건대 앞으로의 판결은 강간 혐의가 아니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 적용된 이유에 대해, 즉 사건의 본질인 권력형 성범죄의 역학 관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도출되길 기대한다. 어떤 결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그만큼의 전문성과 합리성은 갖춰야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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