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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한미 동맹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큰일을 할 때에는 작은 허물을 사양치 않는다” (사마천 ‘사기’의 ‘항우본기’ 중에서)

청와대는 사마천의 말씀에 충실한 모습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한미간 이견이 표면화하고 있다는 우려에 청와대는 “생각에 차이가 있다고 이혼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때도 “이미 큰 물줄기가 형성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자체가 협소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북문제를 두고 한미가 이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70년된 동맹이 깨지진 않는다. 한미동맹은 동맹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대북문제가 한국과 미국 각각의 국가적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한 한미동맹은 견고할 것이다. 파열음을 직접 내고 있는 미 국무부가 “한미간 균열이 있다는 건 언론의 지나친 우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큰 그림에 도달하기 위해 한미간 작은 균열은 협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간 이견은 65년 간 꿈꿔왔던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협소한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논란이 된 ‘한미균열’은 주로 결정된 정책을 이행하는 실무단계에서 제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문제에 대한 구상에 합의를 해도 ‘디테일의 악마’에 대한 한미간 의견조율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때도 백악관이 아닌 재무부와 국무부에서 반발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협소’했던 한미 실무진들 간 균열이 쌓이고 쌓여 ‘정책방향에서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한미간 화법이 달라졌다. 한미간 이견을 부인하던 한미 당국 모두 “이견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협조 및 대북제재 유예를 검토한다던 정부는 어느새 “연락사무소는 한국의 외교시설이기 때문에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논리를 바꿨다.

지난 8월 유엔군사령부는 남북 철도ㆍ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 은행들에 선제적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ㆍ24조치 해제 검토’를 언급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돌연 “한국은 미국의 승인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권침해성 발언까지 하며 사태를 진압했다. 실무레벨에서 시작된 균열이 정상급까지 올라가서야 진정이 된 것이다.

결국 핵심질문은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이견이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느냐가 아니다.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 이견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과업을 성취하는 데에 얼마나 큰 장애로 작용하느냐다. 그리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한미 양국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다. 큰일을 위해 작은 허물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작은 허물이 큰 허물이 되어 큰일을 그르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미 국무부와 재무부의 실무진은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왜 수용하지 못하는지, 한국 외교부와 통일부는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돼야 제재완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과 왜 다른지, 그 이유와 현장의 목소리를 시시콜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혼합된 형태의 소통체계가 정례화돼야 한미 이견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한미 외교부-국무부 라인뿐만 아니라 통일부-국무부, 국방부-국방부 라인을 너머 한미 외교ㆍ국방, 한미 외교ㆍ통일채널 간 소통을 정례화하면 상호 ‘역린’을 건드리지 않은 선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큰 그림에 도달하기 위해 작은 균열은 협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라는 큰 그림은 말그대로 ‘65년간 이루지 못한 꿈’이기 때문에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해야 한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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