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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靑 국민청원 집중점검④]경찰수사도 ‘국민청원’ 눈치만…“원님재판” 우려도
‘여성이라 폭행을 당했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올린 여성을 엄벌해달라는 내용의 역청원 글이 청원 10일 만에 15만 명의 지지자를 모았다. 사건 당사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늘어나며 일각에서는 “청원으로 수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최다추천 국민청원 절반은 ‘엄벌’ 요구
-청원 따라 수사방향 바뀐다는 지적도
-경찰도 “국민청원 신경 쓸 수밖에 없어”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단 이유만으로 피해자 두 명은 남자 5명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가해자의 신원을 밝혀주시고, 무자비하게 피해자를 폭행한 가해자에게 죄에 맞는 처벌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수역 폭행사건’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지난 13일 서울 동작구 이수역의 한 주점에서 여성이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글이었다. 청원인은 “남자 다섯이 한 여성을 두고 ‘메갈’이라며 욕설과 비하 발언을 하며 폭행까지 했다”며 “경찰은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협하도록 방관했다”고 주장했다.

청원 글은 게시된 지 하루 만에 20만명(26일 현재 36만명)이 넘는 지지자가 모여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청원인이 늘면서 경찰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청원 글이 올라온 당일 경찰은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이례적인 입장 발표까지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이 녹화된 영상이 공개되며 상황은 반전됐다.

일방적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여성 쪽의 장시간 욕설이 담긴 영상에 여론은 급반전됐다. 일방적 피해자라 주장하던 여성 측에 대한 비난이 잇따랐고, 일부에서는 경찰의 성급한 입장 발표를 두고 “여론 눈치를 살핀다”며 비판했다. 급기야 최초 청원을 올린 여성 측을 엄벌해달라는 내용의 역청원 글이 올라와 16만명(26일 현재)이 넘는 지지를 받았다.

대형 강력범죄가 잇따르며 분노한 국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몰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억울한 피해자들의 출구로 작용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반대편에서는 “국민청원이 여론재판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역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청원은 ‘강서구 PC방 살인 피의자 엄벌’이다. 119만2049 명이 동의하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2위인 ‘난민법 폐지’ 청원(71만4875명)과 비교해도 40만 명 이상 차이 나는 상황이다.

강서구 PC방 살인 역시 사건 초기에는 일반적인 강력사건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국민청원을 통해 엄벌 여론이 형성됐고, 경찰은 이례적으로 피의자 김성수(29)의 신원과 얼굴을 공개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국민청원 게시판이 신설된 이후 최다 추천 청원을 살펴보면, 상위 10개 청원 중 형사사건의 피의자를 엄벌해달라는 내용이 절반인 5건에 이른다. 아동학대와 음주운전, 미성년자 성폭행범과 같이 특정 사건을 바탕으로 양형 기준을 개선해달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전 아이돌 그룹 멤버를 상대로 사생활 동영상 유포 협박 혐의를 받은 피의자를 지목해 엄벌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당시 청와대도 해당 사례를 언급하며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후 경찰 수사 결과에서 해당 피의자의 동영상 유포 혐의는 무혐의로 나타났다.

수사 결과도 나오기 전에 직접 당사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는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인 분석도 많다. 국민적 공분을 샀던 윤창호 씨의 비극은 국민청원을 통해 여론이 모이며 음주운전자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윤창호법’의 발의까지 이어졌다. 윤 씨의 친구들은 “국민청워에서 보여준 지지가 윤창호법 발의에 큰 힘이 되고 있다”며 “법안 처리를 위한 노력도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사건의 경우, 국민청원에 쏠린 여론이 오히려 ‘현대판 원님재판’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사건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사건 상당수가 국민적 공분을 사며 청와대로부터 “엄벌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이 같은 여론이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강력사건을 맡은 한 일선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수시로 확인하며 몰려드는 청원자 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찰 입장에서는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사안인데 ‘사형’까지 거론되는 상황과 청와대의 엄벌 답변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체로 여대를 활보하며 사진까지 찍었던 ‘동덕여대 알몸남’ 사건의 경우에는 경찰 수사보다 국민청원이 먼저 이뤄졌다. 엄벌 청원이 힘을 얻으며 경찰은 이례적으로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지만, 정작 법원에서 기각되는 일도 있었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수사기관은 형량을 정하는 곳이 아님에도 엄벌 여론이 공론화되면 수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자칫 특정 사건에 여론이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은 현재 상황에서 계속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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