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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 사람-심창섭 판사] “쟁점 치열한 소액사건 판결…판사로서의 소신 양보 못해”

“재판하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걸 양보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판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판결이 상급심에서 지지를 받느냐 안 받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지요.”

심창섭(65ㆍ사법연수원 9기)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최고참 판사다. 법원장은 물론 대법원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6기나 빠르다. 하지만 1심 사건, 그것도 3000만 원 이하의 소액사건 전담 법관으로 일한다. 대신 상급심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판결한다. 내년 1월 정년 퇴임을 앞둔 그가 근무평정이나 다음 자리를 생각할 이유는 없다.

이런 독특한 위치 때문에 그가 내린 판결 중에는 기존 법리와 다른 독특한 결론이 난 사례가 많다.

강원랜드에서 사채업자에게 빌린 도박 자금은 안 갚아도 된다는 판결이 대표적이다. 법원은 도박이 허용된 강원랜드의 유사한 소송에서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해왔다. 심 판사는 강원랜드 내에서 도박중독자를 상대로 10일간 10%의 고리 사채 영업이 판치고 있는 점을 들어 소신 판결을 내렸지만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심 판사는 여전히 자신의 판단에 당당했다. “항소심은 사채의 고이율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는데 그건 당사자들도 다 인정한 부분이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성형수술은 다른 질병 치료와 달리 결과를 내야 하는 ‘도급 계약’으로 봐야 한다는 색다른 판단도 있었다. 통상 의료행위는 성과와 무관한 위임 계약으로 여겨졌다. 심 판사는 코 성형수술 결과 환자의 코를 더 휘어지게 만든 의료진에 대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손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측에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심 판사가 기존 판례에 덜 얽매일 수 있었던 데는 다년간의 변호사 생활이 한몫했다. 부장판사까지 지내다 2000년 퇴직한 그는 13년 동안 변호사로 일한 뒤 5년 전 법원으로 돌아왔다. 공직으로 복귀하며 고급 승용차와 운전기사, 넉넉한 벌이를 포기해야 했지만 “다시 하면 더 나은 재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열망이 컸다. “판사가 법대 위에서 재판 진행만 하다 보면 나름의 틀 속에 갇히거나 타성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변호사로서 재판을 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사건 당사자들이 판사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을 감안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을 판단할 때 연륜의 필요성도 다시금 실감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소액 사건을 담당하는 단독판사는 보통 한 달에 600여건을 배당받는다. 그만큼 재판도 신속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로서는 금전을 두고 다투다 보니 법정에서 감정이 격해지는 일이 잦다. 그는 “다툼을 제지하다 판사 스스로 제어를 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기 쉬운데, 아무래도 나이가 있고 나름대로의 경험이 많기 때문에 법정에서 그런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심 판사는 전담법관으로서 쟁점이 치열한 사건을 한 달에 약 60건 정도 배당받고 있다.

법원은 소액 사건 처리에 신중을 기하고 ‘법조일원화’ 차원에서 2013년 경력 법조인을 전담법관으로 처음 임용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심 판사와 우광택(59ㆍ16기) 판사가 소액 전담법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법원장까지 지낸 원로법관 4명이 집중심리 단독판사로 일하고 있다.

심 판사는 “판사는 독립적으로 일한다. 법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들을 존중해드리고 있고 그분들도 재판에 따로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했다. 주로 30~40대인 동료 판사들과도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소액사건 단독판사들 열댓 명과 ‘밥조’를 만들어 함께 점심을 먹는다. 때가 돌아오면 참석자를 파악하고 식당을 정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식사 자리에서 판사님들과 육아 문제나 재판 진행하면서 있었던 일, 결론이 잘 안 나는 사건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말했다.

판사로 일하면서 거창한 좌우명은 없었다. 다만 법정에 들어갈 때마다 “어떤 일이 있든 참고 친절하게 하자”고 다짐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약간은 엄했던 것 같다. 그보다 더 부드럽게 재판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년이 코앞인 판사로는 드물게 소액전담 재판장으로 물러나지만, 자신이 선택한 자리였던 만큼 퇴임을 앞둔 소회도 덤덤했다. “국민이 판사에게 공직자로서 요구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런 제약이 있기 때문에 판사로서 바른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은수 기자/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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