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감정 판결 222건 살펴보니
162건 판결…조현병 37% 최다
“변호인 재판전략따라 결정돼”
최근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며 이들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법정에서 가해자들의 정신감정과 심신미약 판정이 일종의 ‘면죄부’처럼 쓰이고 있다는 우려와 관련, 경미한 범죄보다 중범죄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는 비율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8일 형사정책연구원의 형사정책연구에 실린 ‘법정에 선 정신장애’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정신감정이 시행돼 판결이 선고된 형사사건 222건을 분석한 결과, 실제 재판정에서는 계획적 범행 정황이나 범행 은폐 시도 여부보다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심신미약 판정에 더 영향을 미쳤다.
그간 정신감정이 이뤄진 형사사건 222건 중 심신미약이 인정된 사건은 모두 162건에 달했다. 정신감정을 받은 피고 중 73%가 실제로 심신미약을 인정받은 셈이다. 진단명으로 살펴보면 조현병이 82건(36.9%)으로 가장 많았고, 알코올장애(62건)와 인격행동장애(38건)가 뒤를 이었다.
사건 중에는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수사 결과 계획적인 범행임이 드러난 사건이 37.8%를 기록했다. 사건 후 피고가 증거를 은폐한 경우도 12.6%에 달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재판 과정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형을 감경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심신미약을 판단하는 재판부의 기준은 기존의 인식과 달랐다. 논문은 “범행 양태나 피해가 경미한 피고인의 경우 법원에서 심신장애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오히려 판례에서는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하는 등 범행을 은폐하고자 시도했는지 여부가 사물 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지만, 실제 판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실제 재판에 나서는 판사들은 범행 정황보다는 피해자의 피해 정도와 피고의 주거 불안정성에 따라 심신미약을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다. 주거가 불안정한 피고인의 경우 심신미약을 인정받는 비율도 높았다.
논문은 “변호인의 재판 전략에 따라 심신미약 여부가 인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피고인의 책임능력이 단순히 정신상태에 대한 의학적·법적 판단을 통해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판에 참여한 소송당사자들의 전략과 협상의 산물”이라고 제시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검거된 형사 피의자 184만7605명 중 정신장애인으로 판별된 경우는 0.45% 수준인 8287명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이 가운데 7672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유오상 기자/os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