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장애로 인정될땐 감형사유
신청만으로 재판서 악용되기도
표준화된 심리 모델·기준 없어
“재판마다 양형 제각각” 비판도
#1. 상견례를 앞두고 여자 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신체 일부를 훼손까지 한 혐의로 구속된 심모(27)씨는 경찰 조사 직후 불안증세를 호소했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심 씨는 정신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경찰은 정신감정을 신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이 정신감정을 요청할 경우 재판 과정에서 감형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반면, 정신병원을 탈출해 친모를 살해한 40대 윤모(42) 씨에 대해 경찰은 정신감정을 신청했다. 법원으로부터 감정유치영장을 발부받아 치료감호소에 입감된 윤 씨는 한 달여 동안 감호소에 머물며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수사 당시 가해자인 윤 씨는 정신이상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사를 맡은 경찰은 과거 병력과, 정신병원을 무단으로 나온 전력을 토대로 윤 씨에 대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신이상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증가하면서 정작 정신감정을 신청하는 수사기관은 고민에 빠졌다. 경찰의 정신감정 신청 자체가 재판 과정에서는 감형 사유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의심할 정도로 피의자에게 정신이상 증세가 있다’는 식의 변호 전략이 재판에서도 통하자 최초 수사를 맡는 경찰은 오히려 피의자의 정신감정을 주저하기도 한다.
실제로 정신감정 끝에 ‘심신미약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받은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29)의 경우, 정신감정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100만 명이 넘는 참여자가 몰렸다. 피의자에 대한 정신감정이 오히려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현행 형법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해 의사결정 능력이 약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형을 감경하도록 돼 있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정신감정을 신청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재판 과정에서 심신미약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며 “심신미약이 인정될 경우, 형의 감경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최근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는 정신감정 신청 자체가 변호전력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신혼여행지에서 아내에게 니코틴 원액을 주입해 살해한 20대에 대해 법원은 최근 항소심에서 변호인 측이 신청한 정신감정을 불허했다.
지난 19일에 열린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대법원 양형위원회 소속 양형연구회의 공동 학술대회에서는 “재판마다 심신미약 기준이 달라 양형이 제각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당사자의 심신장애 주장에 관하여 표준화된 심리모델이 없다 보니 재판부마다 심신장애 판단이 달라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정신감정을 신청하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도 심신미약 논란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일선 경찰 관계자는 “심신미약이 감형사유로 작용하기 때문에 최근 정신감정 자체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수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사건 경위 확인을 위해 정신감정을 신청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신청 자체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