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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경에 빠진 중국의 정신문명… 1980년대 ‘허무주의’를 소환하다

현재 경제성장과 부를 과시하는 중국의 모습에서 개혁개방 이전 중국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개혁개방 시기 중국 지식인들이 혁명기와 마오쩌둥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고 정리해 나갔는지 그 속사정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중국의 소장학자 허 자오톈의 ‘현대 중국의 사상적 곤경’(창비)은 80년대 이후 팽배해진 중국의 허무주의의 이면을 깊이있게 들여다보며, 드물게 이 시기를 소환한다.

자오톈은 전통적으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해온 중국이 어쩌다 실리만 따지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됐는지, 그 실마리가 1980년 전국을 휩쓴 ‘판샤오 토론’(또는 ‘인생의 의미 토론’)에 있다고 본다. ‘판샤오 토론’은 수 천만명의 청년 독자를 거느린 ‘중국청년’ 잡지사에서 시작돼 ‘중국청년보’와 ‘공인일보’ 양대 신문이 토론에 참여하면서 대대적인 반향을 일으킨 지상토론이었다. 판샤오는 당시 두 청년의 이름을 합쳐 만든 이름으로, 일명 ‘판샤오 편지’는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다.

“혹자는 시대가 전진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그 시대의 든든한 어깨가 만져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길은 어찌해서 갈수록 좁아드는지, 저는 벌써부터 너무 지쳐버렸습니다”며, 불안과 허무를 드러낸 편지는 청년세대에게 깊은 공감을 얻었고 다양한 해석과 담론을 낳았다.

자오톈은 이 사건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 당시 중국공산당과 지식인들의 대응이 적절치 못했음을 지적한다. 즉 중국공산당은 청년세대에게 개혁개방의 국가 기획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도록 추동하고, 지식계는 그토록 갈구하는 자아를 인정하고 표현함으로써 정신적 곤경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피상적 해결방안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 30년간 중국은 정신적 위기가 이어져 왔다는 게 자오톈의 분석이다.

자오톈은 청년세대의 허무주의적 발언은 그 이면에 이상주의적 격정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를 읽지 못하고, 사회주의 실천의 유산을 새시대에 맞게 어떻게 소화하고 흡수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자오톈은 이어 1980년대 신계몽주의와 90년대 자유주의-신좌파 논쟁도 메스를 들이대 계몽주의의 한계와 중국혁명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자오톈은 문혁 이후 역사적 에너지가 현재와 과거의 이원적 대립에 갇혀 진정한 과제를 사고할 동력으로 기능하지 못한 채 사회주의 과거를 폐기한 데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그의 해법은 역사와 현실에서 길을 찾는 것이다. 이론보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현상을 주의깊게 살펴 방향을 잡아나가야 길을 잃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진핑의 중국의 미묘한 결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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