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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희정 판결 계기 ‘비동의 간음죄’…법조계 의견 분분
“협박없이도 동의없는 성관계 처벌”
“동의 기준 불분명…과잉처벌 우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을 계기로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모두 성범죄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들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향후 논의 방향이 주목된다.

11일 안 전 지사의 판결문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2부는 ‘의사에 반하여’라는 표현을 16차례 사용했다. 재판부는 둘의 성관계에 명시적 합의가 없었다고 판단하면서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절하지 않았더라도 둘의 관계, 간음(성관계)에 이른 경위 등을 종합해 당시 피해자가 간음에 동의하지 않았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는 성관계를 성범죄로 규정하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한 여성 변호사는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우리나라 법개정을 권고했고, 선진국에서도 비동의 간음죄를 적용하고 있다”며 “성범죄가 단순 ‘폭행’과 ‘협박’을 통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다. 현행법을 제대로 적용해도 성범죄에 관한 사각지대가 생기기 때문에 비동의 간음죄를 명문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대리인을 맡고 있는 서기호 변호사는 “이미 미국과 영국, 독일, 스웨덴 등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동의없는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며 “복합적인 환경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이나 법개정이 아닌 판례 변경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대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성폭행의 폭력수준을 단계별로 나눈 미국의 접근방식을 차용할 수 있다”며 “비동의 간음죄는 간음죄와 성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이 존재하는 현 형법체계를 완전히 배제하는데, 범죄를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될 수 있다. 협의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규범이 도리어 과잉처벌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형법학자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최근 저서에서 폭행, 협박, 위력 등이 없는 성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의지와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수석은 비동의 간음죄 영역은 민사에 맡기고, 형사절차법을 보완해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비동의 간음죄는 폭행이나 협박 등 다른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의사에 반하는 모든 성관계를 처벌하도록 한다. 현행법은 ▷폭행 또는 협박(강간) ▷위계 또는 위력(피감독자 간음 등)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준강간 등) 등 특정 조건을 갖춘 성관계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사에 반한 성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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