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각종 비판에 사과 않고 맞받아쳐
‘보고서 채택 안해줄거라면…’ 역공 선택
김학의로 황교안 치고, 윤한홍엔 “성희롱”
‘배째라’식 맞불 이어 물귀신작전까지…
‘역공’이라는 새로운 인사청문회 돌파법이 제시됐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각종 비판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보수야당 주요인사들에 대한 저격을 이어갔다. 야당 청문위원을 성희롱범으로 규정하고, 코너에 몰기도 했다. 일각에선 ‘배째라’식의 ‘물귀신 작전’을 구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 후보자가 ‘역공’을 펼친 근거로는 “어차피 안해준다”는 판단이 거론된다. 이미 자유한국당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 ‘낙마시킬 사람’이라고 점찍었다는 것이다. 저격수로 분류되는 박 후보자에 대한 분노가 주된 이유로 풀이된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당은) 청문보고서 채택을 하지 않겠다고 이미 생각하고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박 후보자는 이에 기죽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좀 맞아달라’는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의 타이르는 듯한 성토에도 그는 사과 없는 꼿꼿한 모습을 유지했다. 앞서 청문회에 임한 김연철 후보자와는 180도 다른 모양새였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래도 야권 의원들의 지적은 계속됐다. 인사 청문보고서 채택도 어려울 전망이다. 이와 비교하면 박 후보자는 ‘안맞고, 채택 안받기’ 전략을 쓴 셈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사과 대신 청문회 시간을 채운 것은 공격이었다. 박 후보자는 “황교안 당시 장관이 국회에 왔을 때 법사위원장실로 불러 CD를 꺼내 보이고 ‘동영상을 봤는데 몹시 심각하다. 김학의 전 차관이 임명되면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황 대표가 김 전 차관의 성추문을 알고도 임명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만 그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황 대표에게 보여준 것은 아니라) 갖고 있다”며 “(당시 CD가) 책상에 있었다”고 했다.
태국 골프여행 논란에 대해서는 “저희가 20만원씩 예금을 부은 돈으로 간 것인데 여행 경비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찾으려는 야당 탄압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 있었다”며 “당시 여행을 갔다가 온 민주당 의원들이 그로부터 1년간 형제와 보좌관을 포함해 검찰 내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국정원이 미행하지 않았다면 민주당 의원들이 여행 가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느냐”며 “검찰이 제 출국 기록을 다 뒤졌는데 그것은 법을 어기는 일이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기간 대표적인 탄압사례”라고 했다. 박 후보자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 9명은 2009년 1월 임시국회 회기 중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간 바 있다.
자신을 공격하는 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힐난도 눈에 띄었다. 윤한홍 한국당 의원을 향해 박 후보자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적 있냐 등 서면질의 내용은 책자로 인쇄돼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는데 이 서면질의 자체는 개인에 대한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여성에 대한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다”고 했다. 이어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서로 존중해 주는 것”이라며 “윤 의원에게 전립선암 수술받았느냐고 말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에 인사청문회 제도개선을 이번 기회에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후보자를 시작으로 ‘배짱식 청문회’가 이어지는 분위기가 생겨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청문회 제도를 인준표결 방식으로 바꾸거나 차라리 없애야 한다”며 “보고서가 채택이 안돼도 임명을 하니, 후보자가 그걸 믿고 오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표결을 하면 의혹이 있어도 국회에서 인정했다는 명분이라도 서는데, 지금은 온갖 망신을 다 당하기 때문에 장관이 돼도 리더십이 무시된다”며 “청문회의 당초 목적이 사라졌다”고 했다. 야권 내부에서도 이에 청문회 제도개선과 관련된 법안을 다시 발의하거나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태화 기자/th5@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