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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자가면역체계로 본 난민·이민자 혐오

  • 기사입력 2019-04-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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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주체는 내 안에 내가 볼 수 없는 얼룩을 지닐 때 비로소 주체일 수 있다고 한다. 주체는 내 안에 이미 타자를, 또 다르게 말하면 주체는 이미 오염돼 있다. 순수한 자아는 없다.

초다원화된 이 사회는 우리 각자의 정체성을 감소되고 공제된 정체성으로 우리 안에 기록한다. 우리 모두는 이미 작아진 자신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각자 보호하고 증명해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저널리스트 이졸데 카림은 최근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나와 타자들, 민음사)에서 타자를 배제하는 포퓰리즘을 통렬히 비판한다. 포퓰리즘은 타자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본질적인 포퓰리즘적 상황, 즉 사회적·정치적 예외 상황을 정당화하고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우리가 유일한 국민이다”라는 경험적 유령을 부른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서 무조건 비어 있어야 하며 구체화될 수 없는 범주인 ‘국민’을 마치 진짜 존재하는 것인 양, 실제 체화될 수 있는 것처럼 다룬다며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 전략이라고 밝힌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 개념은 어떤 형식으로도 최종적으로 점유되지 않는 텅 빈 자리라고 설파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추상범주라는 것이다.

지난달 3월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 소재 이슬람 사원 2곳에서 난민과 이민자에 혐오감을 가진 28세 청년의 무차별 총격으로 50명이 사망했다. 뒤이어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에서 중학교 학생 51명을 태운 스쿨버스가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 운전자에 의해 납치돼 방화, 전소됐다. 학생들은 무사히 구조됐지만 자칫 어린 학생들이 참변을 당할 뻔했다. 범인은 “지중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민들의 죽음을 멈춰야 한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또 지난달 26일엔 리비아 인근 해역에서 구조된 아프리카 108명의 난민들이 자신들을 구해준 상선을 납치, 몰타 항까지 가도록 한 사건이 벌어졌다.

지구도시가 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갈등으로 상처를 입고 있다. 한국은 예외일까. 아니다. 지난해 6월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이 난민신청을 하면서 격렬한 찬반 논란을 겪었다. 또 최근엔 이언주 의원과 배우 정우성 사이에 작은 공방이 있었다.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2월호에 따르면 1994년 난민협약 가입 이후 2019년 2월까지 우리나라 난민신청자는 총 5만 792명. 이 중에서 949명만이 난민 인정을 받았고, 2015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올해의 경우 신청자 1886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14명, 인도적 체류자는 27명이다.

취업자격을 갖고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2019년 2월 28일 현재)은 59만2599명. 외국인은 이미 내 입안의 임플란트, 내 몸의 인공장기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몸에 인공장기 수술을 하면 자가면역체계는 격렬하게 내 몸의 타자를 공격한다. 그러다 인공장기가 작동을 멈추면 자신도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 공격을 멈춘다. 이제 외국인은 우리사회 안에서 제거할 수 없는 타자로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닌가.

난민 역시 잠재적 가능성으로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앞으로 도래할 ‘제2의 예멘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유럽으로 밀려오는 북아프리카 난민에 대해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지젝은 “무조건 반대도, 무조건 찬성도 모두 더 나쁘다”라고 말한다.

난민 문제는 ‘탈구축’의 철학자 데리다적 관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데리다는 환대의 대상으로서 타자는 항상 이미 손님(hospes)이면서 동시에 적(hostis)이라고 본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대는 나-우리의 동일성의 해체를 낳기 때문에, 항상 해석과 선별이 필요하다는 모순적인 명령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명령 사이에서 협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데리다는 협상에 대해 말하면서 ‘절충’을 ‘발명’이라고 표현한다. 독창적인 하나의 발명. 교섭이 불가능한 것의 이름 아래, 무조건적인 것의 이름 아래, 절충을 허용하지 않는 어떤 것의 이름 아래, 절충해야 한다고.그러한 절충에는 지젝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할당할 거주지, 그들이 지켜야 할 법과 사회 규범 등이 규준으로 포함돼야 한다. 이러한 규준이 충분히 언명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우리는촘촘하고, 끈기있게 이 규준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마치 발명하듯이
 
김능옥 레이아웃룸 에디터 kn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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