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북한군이 일방적 폐쇄 뒤 5년만
-지금까지 매일 하루 2회 반드시 통화
-일상 얘기까지 나눌 정도로 친해져
남과 북, 유엔사 관계자들이 직접 대면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미군 장교가 “내 여자친구는 한국여성”이라고 소개하자 북한군이 “우와”라며 탄성을 내지른다. 북한군은 “아내와 두 자녀가 있다”며 가족 얘기를 꺼낸다. 영화 속 상상이 아니다. 지난 1년여간 DMZ(비무장지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전화통화로 업무 얘기 외에 신상까지 공유하던 이들은 직접 만남도 가졌다.
지난해 2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이후 급물살을 탄 남북 대화 분위기가 7월 판문점 내 유엔사령부와 북한군 간의 직통전화 연결로 이어져 지난 1년여간 일어난 일들을 미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조명했다.
판문점 남측 유엔사 일직 장교 사무실과 북측 통일각에 각각 놓여진 북한군과 유엔사를 연결하는 직통전화는 지난해 7월 약 5년 만에 복원됐다.
북한은 지난 2013년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유엔사와의 직통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유엔사는 이 기간 북한군과 교신하려면 판문점 내 군사분계선에서 메가폰을 들고 큰 목소리로 문서를 읽는 수밖에 없었다. 첨단 현대군이 고조선 시대나 다름 없는 육성 소통에만 의존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유엔사-북한군과의 ‘핫라인’ 복원 이후 양측은 매일 하루 2회(오전 9시30분, 오후 3시30분) 정례적 전화통화를 하며 업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양측의 대화가 남북관계의 핑크빛 기류가 되라는 염원을 담은 것일까. 이들이 매일 사용하는 전화기 색깔은 분홍색이었다.
유엔사와 북한군의 정례적 통화는 최근 흔들리는 동북아 정세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다.
동북아 정세는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다시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일과 9일 단거리 발사체 등 강도 높은 화력 훈련을 재개하면서 미국과 한국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사-북한군 핫라인은 폐쇄될 기미가 없다.
유엔사와 북한군은 6.25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과 비무장지대(DMZ) 지뢰 제거 작업 등과 관련해 총 164차례의 메시지를 직통전화로 교환했다.
WSJ에 따르면 유엔사 측은 북측과 일상적으로 소통하면서 이제 북한군과 ‘주변적인’ 얘기까지 나눌수 있는 관계가 됐다는 것이 유엔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유엔사 소속 미군 장교인 대니얼 맥셰인 중위는 “북측 8명의 카운터파트와 충분한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면서 북측 관계자들과 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 팀인 LA 다저스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맥셰인 중위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한국여성이라고 소개하자 한 북한군은 ‘우와’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한 북한군은 유엔사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부인과 두 자녀가 있다면서 가족관계를 밝히기도 했다.
직통전화로 소통을 주고받던 유엔사와 북한군 관계자들은 방문을 통해 몇 차례 대면하기도 했다.
북한 군인들은 유엔사의 애플 영상통화 서비스 ‘페이스타임’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유엔사 매점에서 가져온 스낵 ‘도리토스’와 초코파이에 큰 관심을 표시했다고 한다. 북한 군인들은 자신들의 휴일 만찬 계획을 얘기하고 담배나 위스키에 대한 선호도 나타냈다.
WSJ는 유엔사와 북한군의 이런 관계에 대해 “최전선의 긴장이 낮춰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남북과 유엔사는 남북간 9.19군사합의에 따라 지난해 10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남아있던 지뢰를 제거하고, 남북 초소 9곳을 폐쇄한 뒤 모든 화기와 탄약을 철수시켰다. 상호 간에 불필요한 감시장비도 제거했다.
현재 판문점 경계를 맡은 전력은 유엔사 경비대대 소속 인원 35명과 북측 인원 35명이며, 양측 모두 비무장 상태로 전환해 근무하고 있다.
양측은 상호 동의할 수 있는 근무수칙을 수립 중이며, 근무수칙이 확정되는 대로 민간인 관광객들의 JSA 자유왕래를 허용할 계획이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