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현지시간) 범죄인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EPA] |
흔들리는 일국양제…중국 시스템 피해 해외로 떠나
2014년 ‘우산운동’ 이후 꾸준히 이민 문의 증가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범죄인 인도법(이하 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이후 해외 이민을 요청하는 홍콩 시민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정부의 송환법 추진으로 홍콩과 중국을 묶어 온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나라 두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 중국의 정치적 압력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이민을 선택하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홍콩에서 불고 있는 이민 행렬은 과거 중국으로의 주권 이전을 앞두고 단기간 폭발적으로 이민이 증가했던 것과 달리,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력 확대에 나선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온 현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반송환법 시위 이후 해외 시민권 취득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유럽국으로 이주를 원하는 홍콩 시민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존 후 이민 컨설팅의 대표 존 후는 “최근 이민과 관련한 전화를 하루에 100통 가량 받고 있다”면서 “이는 시위가 시작되기 전과 비교해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민 문의가 뚜렷하게 증가한 시점은 지난 2014년 홍콩에서 발생한 참정권 시위인 ‘우산시위’ 직후였다. 후 대표는 “지난 5년 간 해외 이민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는데, 이는 정치적 압력으로 인한 사유가 가장 많다”면서 “호주나 캐나다, 영국이나 미국 등 유럽 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캐나다에 투자 이민을 신청한 한 시민은 자녀가 중국과 비슷한 시스템 하에 교육받고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아 이민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홍콩의 교육 시스템이 중국의 교육 시스템과 비슷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자녀들은 확실한 가치가 정립된 곳에서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면서 “나는 홍콩을 너무 사랑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홍콩 시민들이 가장 이민을 원하는 국가는 캐나다다. 이민 컨설턴트에 따르면 지난해 캐나다로의 거주 신청이 승인된 건 수는 1525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12% 증가했다. 2015년 895건과 비교해 3년 만에 약 2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대만은 저렴한 투자 비자를 도입해 최근 몇 년 동안 홍콩 시민들의 관심을 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31명이 투자 비자를 통해 대만 영주권을 확보했는데, 이는 전년대비 2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민 분야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탈(脫) 홍콩 움직임이 최근 몇 년 새 뚜렷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골드맥스 이민 컨설팅의 마가렛 차우씨는 “최근 이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중국 주권으로의 이전을 앞두고 시민들이 홍콩을 서둘러 떠난 것과는 다르다”면서 “자사 역시 이민 컨설팅 건수가 매해 20~30% 늘고 있고 (100만명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지난 9일 이후 문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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