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시장 개척
클라우드 컴퓨팅-앱마켓 선구자
포브스 ‘10년간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
노숙자·아동건강 위해 자선재단 설립
총기 판매업체에 자사 SW서비스 중단도
“저는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면,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기가 어렵습니다.(When I get something in my head, it‘s hard for me to just let it go.)”
누구나 매일 생각을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이라면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10대 소년 시절부터 자신의 생각을 공상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어 결국에는 세상을 바꾼 이가 있다.
바로 ‘세일즈포스(salesforce.com)’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54)다.
클라우드 컴퓨팅, SaaS의 개척자
베니오프는 불과 15세 때 게임회사를 차리고 사업에서 얻은 이익으로 대학 학비를 마련한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시절 애플에서 인턴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기업인 오라클에 스카우트돼 26세에 최연소 부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베니오프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창업자, 자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그를 계속 추동했기 때문이다.
결국 13년 만에 오라클을 퇴사한 그는 1999년 작은 오두막에서 소프트웨어를 빌려주고 데이터를 관리해주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Software as a Service)’를 고안해낸다. 세일즈포스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베니오프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개척자로 불린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PC나 스마트폰으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들을 더 이상 지상(PC)에서 처리하지 않고 구름 위(중앙서버)로 올려보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베니오프는 이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기업들에게 고객관계관리(CRM), 영업 관리, 마케팅 관리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업들이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도 인터넷상에서 편리하게 빌려 쓸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끝났다. 클라우드는 계속돼야 한다’는 세일즈포스의 캠페인에 처음 업계는 의심과 반발을 쏟아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용 고객은 불어났고 세일즈포스는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익숙한 ‘앱 시장(마켓)’도 베니오프가 한발 앞서 고안하고 상용화한 개념이다.
세일즈포스는 2005년 기업이 소프트웨어 앱을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는 앱 거래소 ‘앱익스체인지(AppExchange)’를 선보였다. 이는 2008년 등장한 애플의 앱스토어, 구글의 안드로이드마켓(현 플레이스토어)보다 3년이나 빠른 최초의 공개 앱 시장이었다.
앱익스체인지는 현재 65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으며 5000여 개의 앱이 거래되고 있다.
베니오프의 새로운 발상과 도전은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시장의 지형을 바꿨다.
신뢰를 주는 업계 1위 기업
세일즈포스는 결정, 행동, 소통의 규범으로 네 가지 핵심 가치를 두고 있다.
우선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고객의 개인 정보 보호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투명성 제고를 위해 시스템 보안에 관한 실시간 정보를 제공한다.
둘째는 ‘고객 성공’이다. 고객의 성공은 세일즈포스의 성장에도 중요하다는 생각 아래 고객과 함께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셋째는 ‘혁신’이다. 새로운 솔루션을 정기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
마지막 가치는 ‘평등’이다. 모든 의견을 환영하고 존중해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열린 자세다.
이러한 가치의 실천은 수많은 기업 고객을 사로잡았다. 아디다스,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세계적 기업들이 세일즈포스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 이동통신사 티모바일(T-Mobile)의 존 레저 CEO는 “세일즈포스를 사용한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고객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프랑스 에너지 관리 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크리스 레옹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세일즈포스는 우리의 고객 관리 방식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기업뿐 아니라 재단이나 단체도 세일즈포스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에이즈 퇴치 기금을 모으는 비영리재단 레드(RED)의 뎁 두건 CEO는 “세일즈포스 팀은 레드의 가족이 됐다”고 말했다.
세일즈포스에 따르면 현재 세일즈포스 서비스 사용 기업은 15만여 곳에 달하며 사용자수는 수백만명으로 추산된다.
세일즈포스는 2019회계연도(2018년 2월~2019년 1월)에 132억8200만달러(약 15조4000억원)의 매출과 98억3100만달러(약 11조4000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
베니오프는 2016년 쟁쟁한 CEO들을 제치고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10년간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 1위를 차지했다.
그의 혁신 리더십은 세일즈포스를 ‘세계 CRM 소프트웨어 업계 1위’ 기업이자 전체 소프트웨어 업계 4위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시켰다.
지난해 완공된 ‘세일즈포스 타워’는 회사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61층, 326m 높이의 이 타워는 샌프란시스코 최고층 건물로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가 됐다. 작은 오두막에서 출발한 소년의 꿈은 약 20년 후 마천루로 실현됐다.
세일즈포스의 성장은 외형에 그치지 않았다. 고객뿐 아니라 직원들도 만족하는 기업, 세계의 수많은 청년들이 들어가고 싶은 기업이라는 내적 결실은 회사를 더 빛나게 했다.
세일즈포스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연속 포천(Fortune)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올랐다.
지난해 그레이트플레이스투워크도 세일즈포스를 ‘세계 최고의 직장’으로 뽑았으며, 인디드 역시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로 선정했다.
또한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세일즈포스를 꼽았다.
세일즈포스는 현재 전 세계에 64곳의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3만6000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책임 있는 자선가, 사회운동가
베니오프는 자신의 힘으로 거대한 부를 이룩한 자수성가형 기업가이기도 하지만 적극적인 기부 활동을 펴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자선가, 운동가로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현재 베니오프의 순자산은 62억달러(약 7조1800억원)로,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 중 239위에 올라 있다.
그런데 자선 순위는 4위로 훨씬 높다. 포브스는 베니오프가 4억5060만달러(약 5220억원)를 기부한 것으로 집계했다.
베니오프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남다른 기업을 세우길 원했다.
그는 회사 설립 첫날부터 회사 자본의 1%와 제품의 1%를 사회에 환원하고 직원 업무시간의 1%를 자원봉사활동에 사용한다는 ‘1-1-1 자선 모델’을 확립했다.
또 세일즈포스를 설립한 다음 해인 2000년에는 부인 린 베니오프와 함께 자선단체인 ‘세일즈포스닷컴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인 기부 활동에 나섰다.
재단은 아동 건강, 환경, 공공 교육, 노숙자(홈리스) 등 다양한 분야에 거액을 기부해왔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교(UCSF)에 2억5000만달러(약 2900억원) 이상을 기부해 UCSF 베니오프 아동 병원을 설립했으며, 올해 5월에는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해 3000만달러(약 350억원)를 쾌척했다.
베니오프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시가 실리콘밸리 기업들로 인해 집값과 물가가 너무 올라 노숙자가 늘고 있다며 기업들에게 ‘노숙자세’를 물리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사회적 책임을 위해선 고객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 잇따른 총기 참사로 희생자가 발생한 가운데, 세일즈포스는 민간인에게 온라인으로 총기류를 판매하는 기업에 대해 자사의 소프트웨어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세일즈포스는 기존 고객인 소매 기업 캠핑 월드 측에 군용 소총 판매를 중단하거나 자사의 소프트웨어 사용을 중단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한 바 있다.
‘선(善)을 위해 사용될 때,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세일즈포스재단의 슬로건처럼 베니오프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김현경 기자/p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