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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이사람- 정수빈 사법통역사] 사건해결 ‘숨은 조력자’…외국인 입되다
“진실파악 위해 ‘통역권’ 보장 중요
공신력 갖춘 자격제도 필요 절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처럼 외국 기업이 연관된 민·형사 분쟁이 늘고 있다. 난민 인정 여부를 다투는 소송도 꾸준하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국제 사법공조 체계도 중요하지만, 1차적으로는 당사자의 ‘말’을 제대로 듣는 게 우선이다. 사법통역사로 사건 해결의 ‘숨은 조력자’로 활동하는 정수빈 씨를 만났다. 그는 서울중앙법원과 서울중앙지방경찰청 등의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수사, 법의 집행 등 사법절차 내에서의 모든 통·번역에 동원된다고 볼 수 있어요. 보통 민사, 형사, 행정, 넓게는 특허까지 제 업무범위에 해당되는데, 형사사건이 압도적으로 많죠.” 정수빈 통역사는 이런 외국인 문제 해결의 최전선에 서 있다. 경찰청과 검찰, 법무부와 법원을 오가며 법적 절차에 관련된 영어와 중국어 통역을 한다.

‘BMW 엔진결함 은폐 의혹사건’ 때 압수수색 현장에 동원돼 통역지원을 하는가 하면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 때는 제주도로 넘어가 귀화신청을 한 난민들에게 통역 지원을 했다. 현장에서 외국인 용의자 체포를 위해 형사들과 잠복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다수가 제도적 어려움을 많이 겪는 당사자의 이른바 통역권을 보장해주는 편이지만, 여전히 외국인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는 걸 현장에서 많이 느껴요.”

그는 통역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통역사는 말을 전달해야 하지, 주관이 조금이라도 개입되는 순간, 사건처리는 물론 당사자의 처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중립을 중시해요.”

그를 가장 힘들게 한 사건이 있다. 바로 외국인 성범죄 피해사건. “피해자의 진술대로 통역을 하니 감히 입에 담기도 힘든 상황들이 있었고, 저도 사람이다 보니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려고 노력했죠.”

처음부터 사법통역사의 길을 걸은 건 아니다. 2011년부터 통역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제반 분야 통역 업무를 주로 맡다가 2013년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본 뒤 본격적으로 사법 통역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언어적 어려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사법통역에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현재 사법통역 자격시험은 법원이 인증하는 법정통역 인증시험과 한국자격교육협회에서 발급하는 사법통역사 자격증이 있다. 정 통역사는 두 가지 시험에서 모두 통과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사법통역 분야는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할 만큼 숙련된 인력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며 “사법은 법학개론, 형법, 형소법 등 통역에 필요한 최소한의 이론적인 공부는 물론이고 사법기관의 업무 프로세스나 등 실무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분야 통역도 하고 있는 정수빈 통역사는 전문성을 쌓아 의료소송과 법의학 관련 사건의 통역을 맡아보고 싶다고 했다. “과학수사에서는 법의학으로 들어가는 수사가 있는데, 사법과 의료 통역활동을 해온 만큼 의료소송이나 법의학 소송 전문가로 거듭나고 싶어요. 난민지원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개인적인 목표에요. 기본적인 인권보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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