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초래한 혼란 수습” 명분 내세워
14일 시위도 홍콩 시민 11만여명 참여
지난 9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 홍콩 시민들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집회에 압박을 느낀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최근 잇달아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중국 정부가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람 장관은 사실상 송환법을 철회했다. 하지만 시위대의 사퇴 요구에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람 장관이 임명권을 가진 중국 정부에 사임을 요구했지만 거부됐다”고 현지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 15일 보도했다.
‘친중파’인 람 장관의 사퇴는 홍콩 시위대의 핵심 구호일 만큼 ‘송환법 반대 집회’의 최대 쟁점이다. 그가 송환법 처리를 강행하려 한 데다, 집회 도중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일어난 것에 대해 홍콩 시민들이 책임자 처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FT에 따르면 람 장관은 홍콩 현지의 대규모 반중국·반정부 시위로 인한 혼란이 확대된데 책임을 지고 최근 수주 동안 수차례 중국 정부에 “장관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스스로 초래한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며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 중 한 명은 “해당 혼란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아무도 그 일을 맡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람 장관은 최근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송환법을 사실상 철회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 9일에는 취재진에게 “송환법이 사실상 사망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신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답변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람 장관의 ‘사실상 철회’ 발언에도 송환법을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이날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AP통신 등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 11만5000여 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2만8000여 명)은 일요일이었던 지난 14일 홍콩 사틴 지역의 사틴운동장에 모여 사틴버스터미널까지 행진을 벌였다.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는 ‘송환법 완전 철회’를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인근 쇼핑몰에도 난입해 경찰과 격렬히 충돌해 시위대와 경찰, 양측에서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매체들은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경찰에 대한 홍콩 젊은이들의 불신감이 높아져 더 큰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환법은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중국 등에도 범죄자를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체제 인사나 인권 운동가에 대한 중국 본토 송환 시 이 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법안의 완전한 철회 등을 요구하며 주말마다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주최 측은 역시 일요일인 오는 21일에도 입법회 부근에서 람 장관의 퇴진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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