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수준 반세기 만에 최고치…“불안과 절박함이 분노로 이어져”
쪽방이 밀집해 있는 홍콩의 주택가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수백 만의 홍콩시민을 거리로 이끌며 범죄인 인도법 철폐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홍콩의 ‘반(反) 송환법’ 시위가 반정부, 반중국 성향의 시위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홍콩 시민들의 분노의 근간에는 낮은 임금과 높은 불평등 등 오늘날 이들이 처한 경제적 현실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해 정부의 유류세 인상 방침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가 반불평등 운동으로 확산된 것과 유사하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홍콩 시민들이 표출하고 있는 정치적 분노 뒤에는 홍콩 시민들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안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이 새 정부를 원하는 열망과 함께 시위를 부채질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늘날 홍콩 시민들은 낮은 임금 수준과 높은 임대료, 최고치에 달한 불평등이라는 혹독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NYT는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불평등한 곳이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가장 홍콩 시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주택문제다. 보도에 따르면 홍콩의 집 값은 지난 10년간 3배 이상 올랐고, 많은 시민들은 시민들은 몸만 누일만한 2평 남짓에 쪽방에 월급의 대부분을 쏟아붇고 있다.
범죄인인도법안에 반대해 일어났던 홍콩의 대규모 시위의 근원적인 원인 중 하나가 경제적인 불만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쪽방같은 아파트로 상징되는 홍콩인들의 팍팍한 삶이 반정부, 반중 정서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최근 로이터 통신이 인터뷰한 홍콩의 젊은이 중 21세의 루카 통은 28㎡(약 9평)의 아파트에 부모, 두 자매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로이터] |
이미 거주지역이 초고밀도 상태에 다다른 가운데, 정부가 새로운 토지를 고급 주택 개발에만 활용하면서 주택부족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여기에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세대수를 최대화한 쪽방 주택들을 공급하면서 값비싼 쪽방 살이를 하는 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더불어 부동한 가치를 높이겠다는 의도로 정부가 중국 구매자들을 선호해 온 것도 주택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전반적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결국 주택 소유자들만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임금수준의 상태는 더 심각하다. 집 값이 3배나 뛸 동안 홍콩 시민들이 받는 임금은 겨우 25% 증가하는데 그쳤다. 오늘날 홍콩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82달러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에 따르면 평균 가계비를 기준으로 한 홍콩의 적정 최저 임금은 7달러 수준이다. 즉, 현재 홍콩 시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에 한참 못미치는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의 현실을 외면해 온 정부는 정작 기업에게는 각종 혜택을 남발해왔다. 홍콩 정부가 생각하는 홍콩의 경쟁력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홍콩 법인세는 세계 주요 도시 중 최하위권이다.
21일(현지시간) 홍콩 시위대와 대치한 전경들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 [AP] |
미국 존스홉킨스대 호풍흥 정치경제과 교수는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오늘의 현실에서 빠져나갈 길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면서 “현 상황에 대한 불안과 절박함이 현재 홍콩 시위대가 표출하는 분노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반정부 시위들이 일제히 불평등에 대한 불만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NYT는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와 홍콩 시위에는 세계 경제 호황 뒤에 많은 시민들이 남겨져있다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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