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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공포와 조롱의 대상이 된 부동산 정책

지난 주말에도 서울 부동산 시장은 뜨거웠다. 마포에서 가장 비싸다는 A 아파트는 전용면적 59㎡가 12억9500만원에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종전 최고가 보다 1억원 이상 더 뛰었다. ‘서울의 마지막 분양권 거래가능 단지’로 꼽히는 양천구의 B 아파트 59㎡ 분양권도 7억원에 팔려 앞자리 숫자를 갈아치웠다.

서울 집값이 더 오를 거란, 아니 이미 오르고 있는 중이라는 흉흉한 소식에 무주택자들은 막차를 타겠다며 분양 시장으로 달려들었다. 동작구에 이번주 분양하는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 견본주택에는 개관 후 사흘 간 예비청약자 3만명이 방문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면 신규 주택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관심이 더 쏠리는 것 같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분양가가 20~30%는 더 낮아질 것이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시장은 기다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조바심을 내며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영영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우려만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이수 푸르지오 더 프레티움’ 견본주택에서 청약 예정자들이 아파트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무주택자만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분양가 상한제로 직격탄을 맞게 될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조합원들도 공포감에 휩싸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철거하고 분양한다기에 짐 싸서 이주한 조합원들은 갑자기 최소 1억원을 더 내야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오뉴월께에 반포 어딘가의 재건축 아파트를 산 조합원은 한순간에 수억원을 손해봤다는 얘기도 나온다. 손해본 그 돈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운만 좋은 청약당첨자가 가져가게 된다니 분통이 터진다. 여당 내에서도 상한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다고 해서 ‘혹시나’하는 기대를 품고 있지만, 이제까지 밀어부쳐온 행보를 봤을 때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시장 한쪽의 정서가 공포라면 다른 쪽의 정서는 조롱이다. 끝없이 오르는 집값을 보며 ‘그것 보라’며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지 않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존버 정신’(무조건 버틴다는 뜻)과 ‘호재네요’(아무 소식이나 다 집값에 호재가 된다는 뜻)를 유행어처럼 입에 올린다. 투기과열지구·청약조정지역 등 규제지역은 ‘정부 공인 투자 추천 지역’이란 조롱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정부의 정책은 판판이 깨졌다. 2017년 첫 부동산 대책인 6·19 대책부터 지난해 9·13 대책까지 열번이 넘는 집값 안정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현 정부 들어 서울 집값은 참여정부 때보다 더 많이 올랐다. 정책을 믿고 기다린 사람은 패자가 되고 정책을 거슬러 행동한 사람만 승자가 된 형국이다.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약속을 눈 꼭 감고 한번 더 믿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큰 문제는 시중 유동자금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M2(광의통화)는 2014년과 비교해 무려 800조원이 늘어난 2800조원대에 육박한다. 미·중, 한·일 간 무역갈등에 글로벌 경기에 위기감이 감돌고, 한국의 잠재성장률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주식 시장 등 다른 분야에서 유동성을 흡수해주기도 쉽지 않다. 한은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더 내릴 태세다. 단순히 경기가 어려워 모든 자산가치가 하락할테니 부동산 값도 하락할 것이라는 식의 분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공급 부족도 문제다. 정부는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100%에 육박한다고 하지만, 이는 실거주자 대비 주택수를 말할 뿐이다. 서울 밖 수도권에는 서울에 집을 구하지 못해 밀려난, 즉 언제든 서울로 진입하려 준비 중인 수요가 넘쳐난다. 지방에서도 상경투자를 하고, 심지어 해외에서의 수요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서울의 주택 수요는 무한대라고 봐야 한다. 공급 확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공급이 충분하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규제 끝판왕’이라 불릴 정도로 시장참여자들의 자산을 임의로 배분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을 경우 정책 신뢰도저하는 물론 시장의 공포감과 정책에 대한 조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본격 시행까지 남은 두달여 기간 동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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