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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서 강연한 김동연 “결핍은 혁신의 어머니”…기업인들 ‘끄덕끄덕’
-영국-스페인 칼레해전서 혁신 사례 꼽아
-“결핍에서 혁신 나온다” 기업인들에 강조
-‘유쾌한 반란’ 주제로 인생과 경영 얘기

남도일보의 최고경영자(CEO) 아카데미인 제5기 K포럼 강좌가 18일 웨딩그룹 위더스 광주에서 열린 가운데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남도일보]

[헤럴드경제(광주)=김영상·이원율 기자] #. 역사를 바꾼 세기의 전쟁으로 손꼽히는 칼레(Calais)해전(1588년). 무적함대 스페인과 영국이 국가운명을 걸고 벌인 전쟁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에서 영국은 승리함으로써 자자손손 오랫동안 번영을 누리게됐고, 그때까지 세계를 제패하던 스페인은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영국의 승전보는 의외였다. 영국의 병력은 스페인의 막강 병력에 비해 ‘게임’이 되지 못했다. 스페인은 9000명의 해군과 그 배 위에 2만명의 보병을 태우고 영국을 공격했고, 영국은 불과 6000명의 해군으로 맞서야 했다. 전력상 영국의 패배는 명약관화였다. 그런데 영국이 이겼다. 이유는 뭘까.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혁신’과 ‘결핍’을 그 이유로 꼽았다. 지난 18일 남도일보의 최고경영자(CEO) 아카데미인 K포럼 강의를 통해서다.

“당시 대포는 청동대포였어요. 화력이 좋았죠. 근데 비쌌거든요. 영국은 주철대포를 만들었어요. 주철은 대포에 좋은 재질은 아닙니다. 비오면 녹이 슬고, 신축성이 떨어졌죠. 근데 유일한 장점은 싸다는 것이었어요. 주철대포는 청동대포 값의 4분의1이었고, 이에 대량생산이 가능했어요. 청동대포에 비해 마음껏 만들수 있었어요. 영국이 대포에 관한한 ‘혁신’을 이룬거죠.”

영국 해군은 이 주철대포를 대대적으로 실전배치에 성공했고, 스페인 배에 융단폭격을 가함으로써 병력 숫자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무적함대를 무찌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기후나 물자 등 전쟁 주변 상황이 승패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포럼 강연 중인 김동연 전 부총리. [사진제공=남도일보]

“당시 영국은 청동대포를 만들 수 있는 구리도 없었고, 가난해 돈도 없었어요. 근데 청동 대신 주철대포라는 혁신을 통해 국가 존망을 건 전쟁에서 이겼고, 이로써 강대국 순항의 배를 타게 된 것입니다. 포럼에 참석한 기업인들에게 제가 혁신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날 강의에 참석한 인원은 120여명. 주로 경영상황을 몸으로 가득 체감하고 있는 호남 기업인들이었고, 이들은 김 전 부총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은 당시 스페인과 대항할 재원과 자금도 부족했어요. 한마디로 ‘결핍’한 상태였죠. 이 결핍이 주철대포라는 혁신을 탄생시킨 것이지요. 요즘 어려운 경기상황, 불투명한 글로벌경제 상황에서 이것이 기업 경영의 하나의 팁이 되지 않을까요? 결핍이 혁신을 이끈 대표적 사례입니다.”

김 전 부총리가 거론한 또 다른 혁신의 사례는 ‘캥거루 출발법’이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100미터 경기에 출전한 미국의 토머스 버크는 역사상 최초로 단거리 육상에서 크라우치 스타트(crouch start)를 시도했다. 이전까지 선수들은 선 채로 출발했다. 토머스 버크는 ‘역사상 아무도 하지 않았던 자세’를 시도했다. 웅크렸다가 스타트음과 동시에 탄력을 받아 뛰는 캥거루 출발법을 개발, 적용한 것이다. 그는 이 자세로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지금까지 선수들은 이 출발법을 사용한다. 이것이 혁신이 아니면 무엇이 혁신이냐는 게 그의 규정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합니다. 육상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캥거루 출발법처럼, 기업인도 그래야 합니다. 그게 개인에겐 인생의 성공, 기업인에겐 기업 성공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이런 혁신이 기업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정치 등에서 일어날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혁신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날 김 전 부총리 강연의 주제는 ‘유쾌한 반란’이었다. 그의 일관된 주제이기도 하다. 부총리를 그만둘때도 그는 “이젠 소시민으로 돌아가 나만의 유쾌한 반란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개념은 복잡하지 않다. “‘반란’이라고 하면 어감이 좋지는 않은데, 뭐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유쾌한’은 ‘내가 맘 내켜서’라는 뜻이죠. 그래서 유쾌한 반란은 내가 하고 싶어서 일으키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뒤집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죠.”

김 전 부총리는 어렸을때의 어려운 환경과 이를 극복한 사례를 소개하며 자기만의 ‘유쾌한 반란’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집안이 망해 청계천 판자촌에서 학교를 다니던 일, 그 판자촌이 강제철거되고 성남의 판자촌으로 쫓겨가 천막을 치며 생활했던 일, 소망했던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상업고를 가 졸업도 전에 은행에 취직해 장남의 짐을 짊어져야 했던 일, 야간대학 진학과 고시 공부를 하게 된 일 등을 담담히 풀어냈다. 평생을 고생 고생한 어머니 얘기가 나왔을때 그의 목소리는 잠시 잠겼고, 일부 청중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김 전 부총리는 강의 마지막에 퀴즈 하나를 냈다. ‘(이 나라는)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다. 이러하니 어찌 충신 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글귀를 소개하고, “이 말을 누가 했을까요?”라고 물었다. 답은 다산 정약용이었다. 다산이 지은 경세유표 처음에 나오는 말이란다.

“200년전 다산이 개혁을 얘기했습니다. 이는 혁신의 다른 이름이죠. 혁신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200년전도, 지금도 가야할 길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혁신, 내 조직에 대한 혁신, 사회에 대한 혁신 등 유쾌한 반란을 통해 이 꿈을 계속 꾸어야 합니다. 저는 그럴 것입니다. 기업인 여러분의 혁신도 성공하길 빕니다.”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포럼에는 포럼 멤버인 광주지역 대표 기업인들과 자영업자, 시민 등 120여명이 참석해 김 전 부총리의 강의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김 전 부총리는 강의 만으론 이들과의 소통에 아쉬운지 질의응답에 성실히 임했고, 참석자 일부와 함께 간단한 호프미팅을 이어갔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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