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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연 광주 강연] “구멍뒤주를 아세요”…‘소시민’ 김동연이 던진 유쾌한 화두
부총리 퇴임한후 9개월간 ‘유쾌한 반란’ 삶
서울 벗어나 지방 돌며 사람사는 세상 경험
구례·상주 등서 젊은 농민과 꿈·희망 얘기
페북서 ‘구멍뒤주’ 제안…호응 좋아 구상 중
예천에 간 김동연 전 부총리가 사과농사를 짓는 젊은 청년들을 우연히 만나 꿈과 희망을 얘기한 뒤, 이들이 재배한 사과박스를 날라주고 있다. [출처=김동연 페이스북]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남도일보의 최고경영자(CEO) 아카데미인 K포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남도일보 제공]

이름 좀 날린다 싶은 사람에겐 두가지 타입이 있다. 공직자엔 더욱 더 해당하는 것이다. 현직에 있을때 상종가를 치는 경우다. 확고한 신념 때문이든, 일처리 능력 때문이든, 인품 때문이든 현직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인기가 올라간다. 현직을 마친뒤 몸값이 올라가는 케이스도 있다. 경제가 제대로 돌지 않고, 정치판이 시끄러울수록 ‘구관이 명관’이란 소리가 나오며 ‘그때 그사람’의 컴백을 바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하 김 전 부총리)은 두가지 다 적용된다. 현직에 있을때도 그랬지만, 야인으로 돌아간 지금도 ‘김동연’을 찾는 이가 많다. 그래서 정치권과 학계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김 전 부총리에게는 중국 대사 제의가 있었고, 큰 대학의 총장 오퍼도 있었지만 다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부총리를 역임했고, 지난해 12월 10일 별도의 이임식을 갖지 않고 1년6개월간의 부총리직을 손에서 놓았다. 그는 이날 이임식 대신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제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간다”며 “지난 1년 6개월간 우리 경제와 민생만 보고 일했는데, 정부 내 의견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일부 있었지만 제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준거(準據) 틀이었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이날 마지막 기자간담회를 갖고는 “퇴임해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가 유쾌한 반란을 이어가겠다”고도 했다. 이 이임사를 끝으로 그는 만 34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는 진짜로 소시민으로 돌아갔다. 그런 김 전 부총리가 광주의 한 강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8일 광주 소재의 남도일보 최고경영자(CEO) 아카데미인 제5기 K포럼에 강사로 초청돼 강연을 펼쳤다. 그는 이날 ‘김동연의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강의했다. 소시민으로 돌아간지 9개월만에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연장에 나타난 그의 표정은 밝았고, 웃음이 가득했다.

주변인에 따르면, 김 전 부총리는 공직생활을 마감한후 지방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자가용이 아닌 기차나 시외버스를 타고 지역 곳곳을 찾아다녔다. 그냥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사람 사는 세상을 보고 싶었단다.

9개월동안 경제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지방을 유람하듯 돌아다닌 이유는 하나다. 그는 평소 “고위 공직을 한 사람은 자리에서 물러난뒤 조용히 있는게 도리다. 아는 척 하고 떠들면 그건 도리가 아니다”고 말해왔다. 번잡한 서울은 그가 조용히 있을 만한 곳은 못됐나 보다. 또 공직에 34년이나 몸담았고, 나름대로 지역 현장에 50차례 이상을 찾았지만 공직을 벗어버린 상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냥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서 였다고 한다. 주변인 중 하나는 “김 전 부총리는 부인과 함께 전라남도 구례, 광양, 여수, 순천, 벌교 등을 다녔고, 경북 구미, 상주와 강원도 경기도 등을 돌아다니며 여행도 하고 지역민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삶을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구례와 상주 등에서는 젊은 농민들을 만나 그들의 꿈과 희망을 들어보는 소중한 자리도 경험했다고 한다.

“서울에 있으면 정치권을 포함해 여기저기 지인들이 만나자는 연락을 많이 해오는데, 제 성격이 일일이 거절할 수도 없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구경하자는 생각이 들더군요.”한 주변인은 김 전 부총리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은둔은 아니었다.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해당 지역에서 요청이 오면 강의는 꾸준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순천에 있을때는 순천대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와서 강단에 섰고, 상주에 있을때는 구미 경운대에서 요청이 와서 청중들을 만났다. “의미있는 강의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해 틈틈이 청중들과는 스킨십을 했어요. 정치 경제 사회 현안보다는 제가 살아온 삶과 철학을 반추하고, 청중과 나누고 싶었죠. 광주 포럼에 오게 된 것도 정중한 강의 요청이 있었는데다, 의미 깊은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어 응한 것”이란게 그의 설명이었다.

김 전 부총리 지인 중 하나는 “김 전 부총리는 강의료 전액을 아주대 총장으로 일할때 자신이 만든 ‘아주 희망 SOS’ 프로그램에 요즘도 기부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장학금과 별도로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으로, 학기 중 부모 중 한분이 돌아가셨거나 부모가 실직했거나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제도다. 김 전 부총리는 아주대 총장 재임시절의2년간은 물론 지금까지 5년간 강의료나 원고료 전액을 여기에 기부하고 있다. 순수하게 개인 돈을 기부하는 것이다.

기부 쪽에 관심이 큰 김 전 부총리의 최근 시선은 한 곳에 꽂혀있다고 한다. 김 전 부총리는 지난달 페이스북을 통해 ‘구멍뒤주’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걸 생각하게 된 것은 탈북자 모자의 사망 뉴스를 본 게 계기가 됐다. 김 전 부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안타까운 뉴스, 흉흉한 뉴스들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최근 탈북자 모자가 세상을 떠난 지 두달 만에 발견됐다고 합니다. 굶주림을 피해서 온 분들이 굶주림 속에 죽었다니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는 여섯 살이라고 합니다”라며 “자책을 해봅니다. 정부에 몸담고 있을 때 좀 더 세심하게 신경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자성과 함께 말입니다”라고 글을 썼다. 그러면서 구멍뒤주를 제안한 것이다. 구멍뒤주는 뒤주 윗부분에는 큰 구멍을 뚫고, 아래부분에는 작은 구멍을 뚫어놓은 것을 말한다. 누구든 돕고 싶은 사람은 윗구멍을 통해 쌀을 붓고,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은 손에 잡히는 만큼 쌀을 가져가도록 한 것이 바로 구멍뒤주다. 누가 넣었는지, 누가 꺼내갔는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도와주는 사람은 자기가 기부했다고 밝힐 것 없고, 도움을 받은 이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아도 되니 구멍뒤주는 어쩌면 바람직한 나눔과 사회환원 삶의 모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구멍뒤주에 넣는 것이 돈이면 돈기부이고, 재능이면 재능기부이니, 이런 게 사회적으로 전파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김 전 부총리는 생각한단다. 그가 늘 고민해왔던 사회적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계층 사다리 문제와도 연결돼 있어 보인다.

그가 주창해온 ‘김동연표 유쾌한 반란’과도 맥이 닿아 있다. ‘유쾌한 반란’은 그의 좌우명이자 일관된 철학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 나아가 사회에 건전한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인 중 하나는 “김 전 부총리가 구멍뒤주 개념을 사회적인 시스템으로 확대하는 전도사 역할에 큰 관심이 있고, 그것을 구상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느낌은 좋다. 김 전 부총리가 페북을 통해 구멍뒤주를 제안했더니, 좋은 반응이 이어졌고 동참하고 싶다는 댓글이 숱하게 달렸다고 한다.

김 전 부총리는 K포럼 강연에서 “이런 구멍뒤주 좋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는 9개월전에 공직에서 퇴임하면서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가 유쾌한 반란을 이어가겠다”고 했었다. 제2 유쾌한 반란 출발점이 구멍뒤주가 아닐까 싶다.

광주=김영상 기자/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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