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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이 된 거미집…인류의 ‘공존’을 말하다
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 개인전
갤러리현대서 내달 8일까지 전시
거미 2~3마리가 만들어낸 거미줄
인간·비인간 지구환경 공생 다뤄
환경오염 등 전지구적 시각 제시
토마스 사라세노 작가 [갤러리현대 제공]

현대미술의 성지, 이탈리아 베니스. 더위와 장시간 도보에 지친 현대미술 순례객들이 바다가 보이는 데크 벤치에 모인다. 한 숨 돌리는 사이 아드리아해의 풍광 위로 독특한 형태의 구름들이 걸렸다. 바닷물에 반짝이는 햇볕은 이‘구름들’에 또 반사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낸다. 현대미술작가 토마스 사라세노(46)가 2019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구름의 실종에 부쳐(On the disappearance of clouds)’다. 환경오염 때문에 지구에서 구름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구름과 지구 온난화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적으로 은유하는 작품이다.

건축, 환경운동, 천체 물리학, 열역학, 생명과학, 항공엔지니어 등 수많은 분야를 경계없이 넘나드는 토마스 사라세노의 두 번째 한국전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2017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행성 그 사이의 우리’를 주제로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개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다. 이번 전시규모는 거대 행성을 전시장으로 불러들인 지난 ACC와는 달리 갤러리에 맞게 소박하다. 그러나 우주에 대해, 그 안의 생존과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주제는 여전히 거대하다.

서울 클라우드 시티즈 [갤러리현대 제공]

지하 1층에선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구름’연작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엔 ‘구름’ 그 자체가 아닌 하늘을 떠 다니는 주거형태로의 구름, ‘클라우드 시티즈(Cloud Cities)’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작가는 국가의 경계와 지역의 한계를 벗어난 초 국가적 공간을 공중 도시로 시각화 하는 작업을 계속 해 왔다. ‘서울 클라우드 시티즈(Seoul Cloud Cities)’라는 제목처럼, 전시장 양 벽면엔 남산타워 등 서울의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고 그 위에 ‘클라우드 시티’가 설치됐다. 서울을 위한 장소특정적 설치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층 암실이다. 어둠속을 걷다보면 거대한 거미집을 만나게 된다.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거미집은 그 자체로도 우주적 구조물처럼 보인다. “휴대폰이나 조명을 먼저 보지 말고 어둠에 익숙해져라”고 작가는 권한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반대편 벽면에 투사되는 먼지의 움직임이 보인다. 먼지의 움직임에 따라 목각 실로폰 소리가 들린다. 작은 진동이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다. 작가는 “이 작품은 이 세상에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도 같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아라크네, 우주진, 숨 쉬는 앙상블과 함께하는 아라크노 콘서트, 갤러리현대 설치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거미집은 다른 종의 거미 2~3마리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8주에 걸쳐 만들었다. 종마다 만드는 거미줄의 모양이 다른데, 이들이 겹치고 이어져 독특한 구조물을 완성했다. 2년 전 ACC에서도 선보였던 ‘아라크네, 우주진, 숨 쉬는 앙상블과 함께 하는 아라크노 콘서트(Arachno Concert With Arachne, Cosmic Dust, and the Breathing Ensemble)’다. 넒은 전시장이 아닌 아담한 암실에 설치돼, 집중도는 더 높다.

어릴때 다락방에 진을 치고 있던 수많은 거미들을 보며 ‘저들이 진짜 이 집의 주인은 아닐까’고민했다는 작가는 관객들에게 사유의 범위를 우주로 넓혀보자고 제안한다. 지구는 인류가 홀로 사는 곳이 아니고, 다양한 생물들과 함께 살며 우리는 그 생태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임을 부드럽게 일깨운다. 거미망 전문가들의 학제 네트워크인 ‘아라크노필리아’는 거미망의 유형을 보관하고 아카이브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미 멸종에 대항하는 플랫폼으로도 작동한다. 화석연료없이 공중을 이동하는 ‘에어로센’프로젝트는 인간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해온 ‘기술발전’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인간이 지구환경 생태계의 목줄을 죄는 ‘인류세’의 시대, 동시대 예술은 무엇을 고민해야하고 어떤 형태가 가능한지 사라세노의 작업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은 오는 12월 8일까지 만날 수 있다. 이한빛 기자/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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