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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촉즉발 중동] 52 vs 290…이란 대통령, 트럼프 ‘美인질 52명’에 ‘290명 여객기’ 맞대응
美 외교굴욕·이란 여객기 참사 거론하며 보복 의지
트럼프 52곳 타격 발언, 이란 지도자 강경 반응 불러
이란 유적지도 포함…현실화 하면 ‘전쟁범죄’ 지적
트럼프 ‘이란 정체성=유적지’ 위협, 이란 도발 억제 노림수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폭사’를 계기로 중동에서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미국·이란 정상 간 설전(舌戰)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문화 유적지를 타격하겠다고 트위터로 엄포를 놓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곧바로 미군이 30여년 전 이란 여객기를 격추해 290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으로 받아쳤다. 미국이 실력행사를 하면, ‘290명’의 생명을 희생시키겠다는 복선이 깔린 맞대응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문화 유적지 타격’ 발언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영국 등 국제 사회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유적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자체로, ‘이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두 나라 간 긴장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숫자 ‘52’를 언급하는 자들은 IR655편의 숫자 ‘290’도 기억해야 한다. 이란을 절대 협박하지 마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40년 전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인질 52명과 같은 수의 이란 내 표적을 타격하겠다”며 “이 52곳 중엔 매우 높은 수준의, 이란과 이란 문화에 중요한 곳이 있다. 그 표적들을 매우 빠르고 강력하게 타격하겠다”고 트위터로 위협한 데 대한 반격이었다.

로하니 대통령이 거론한 ‘IR655편’·‘290’은 1988년 미군 순양함 비넨스호가 이란 항공 IR655편을 미사일로 격추해 승객과 승무원 290명(어린이 53명·비이란인 46명 포함) 모두 숨진 사건이다. 당시 IR655편은 이란 남부 항구도시 반다르압바스발 두바이행으로, 걸프 해역 입구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서 격추됐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던 때로 미국은 당시 여객기를 이란 전투기로 오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은 이 ‘사건’으로 이란의 비행기 구매제재를 예외적으로 한 차례 풀어 에어버스 1대를 살 수 있게 승인하기도 했다.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의 장례식이 6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리고 있다. 경찰추산 수 백 만명이 솔레이마니를 추모하기 위해 운집한 가운데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눈물을 흘렸다고 외신들은 일제히 전했다.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AP]

이란으로선 미국으로 인해 ‘참사’를 겪고도 경제제재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한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대목이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굳이 ‘아픈 기억’을 소환한 건 그만큼 미국에 대한 보복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내 유적지 타격을 공언한 게 양측의 충돌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적시한 ‘52’도 미·이란 간 구원(舊怨)이 얽힌 숫자다. 이란의 유적지를 포함한 52곳은 1979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점거 사건에서 억류된 미국인의 수와 같다.

이 사건은 이란 이슬람 혁명 9개월 뒤인 1979년 11월4일 이란의 강경 반미 성향 대학생들이 테헤란의 미 대사관을 급습해 외교관·대사관 직원 52명을 인질로 삼아 444일간 억류한 것이다. 미국은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작전을 펼쳤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외교사엔 굴욕적인 장면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미국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지원해 이란과 전쟁(1980~1988년)을 벌이도록 했다는 해석이 나올 만큼 중동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유적지 공격 위협 발언은 ‘전쟁 범죄’라고 지적했다. 크리스 머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은 “민간인과 유적지를 목표로 삼는 건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지적을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도를 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건 문화유적지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가 깃든 지역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이란의 존엄성·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이 바탕에 깔렸다는 시선도 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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