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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안철수도 그랬다…‘탈당의 변’은 왜 하나같이 절박할까
안철수 탈당 멘트로 본 ‘탈당의 변’ 정치학
安, 바른미래 탈당하며 “힘들고 외로운 길로”
손학규대표 한나라당 탈당땐 “어려운 길 택해”
박지원 탈당땐 “나그네의 절박한 심정으로”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탈당 명언들도 즐비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

탈당(脫黨). 당을 떠난다는 말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면 그 뜻이 ‘당원이 자기가 속하여 있던 당을 떠남’이라고 돼 있다. 뜻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탈당이라는 단어에는 정치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당을 떠난다는 것은 누군가는 당에 남아 있다는 말이다. 진영을 떠나는 이가 있고 계속 주둔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뭔가 어긋났다는 의미다. 서로 좋을때야 떠날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탈당이라는 단어 속엔 헤게모니 싸움과 집단 힘겨루기, 대립과 반목, 승착과 실착, 도태와 방어와 같은 정치투쟁 용어의 잔재가 다분히 묻어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점은 탈당이라는 단어는 평상시는 잘 회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온한 평시라면 탈당 운운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꼭 선거철을 앞두고 꿈틀거리는 게 탈당의 생리다.

이런 ‘탈당’ 단어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른미래당 창업주인 안철수 전 의원이 당을 탈당키로 하면서다. 앞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찬성한 정의당을 비판하며 탈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사례에서 탈당 이슈가 잠시 불거지기도 했지만, 안 전 의원의 탈당 뉴스는 그 이상의 폭발력을 보여준다.

한때 유력 대권주자였던 안 전 의원은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뒤 9월 독일로 떠났었고, 지난 19일 귀국했다. 정계복귀를 한 것이다. 이역만리에서의 1년4개월간의 야인생활을 청산하고 그는 정치권에 돌아왔다. 안 전 의원이 돌아오자마자 실행한 것은 ‘권리행사’였다. 그는 바른미래당의 창업주로서 자신의 지분을 요구했다. 현재 바른미래당 대표인 손학규 대표에게 바른미래당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자신에 비대위원장을 맡겨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둘 사이는 하루만에 틀어진 것이다.

안 전 의원 측은 “당을 맡겼고, 안 전 의원이 돌아오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던 손 대표가 변심했다”고 실망감을 표했고, 손 대표 측은 “오랫동안 집을 비워놓고 이제와서 사는 사람을 밖으로 쫓아내겠다는 심사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느 쪽의 편들 들든, 안 전 의원과 손 대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결별의 수순을 밟은 것이다. 안 전 의원은 손 대표에게 직접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29일 탈당 관련 기자회견에서 “어제 손학규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을 보면서 바른미래당 재건의 꿈을 접었으며 (바른미래당 재창당이)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전날 손 대표는 안 전 의원의 제안을 거절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손 대표의 반대 입장을 확인한만큼 바른미래당에 둥지를 틀고, 당을 리모델링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안 전 의원은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의원으로선 총선이 얼마남지 않았기에 바른미래당에서 손 대표와 헤게모니를 놓고 티격태격 싸우다보면 시간만 지나갈 수 있기에 아예 신당을 창당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했다는 말이 들린다.

어찌됐든 흥미로운 것은 안 전 의원의 경우에서 보듯이 정치권에서 탈당은 자주 등장하며, 그때 내놓는 ‘탈당의 변’은 매우 절박하다는 것이다.

안 전 의원은 바른미래당 탈당 의사를 밝히면서 “저의 길은 더 힘들고 외로울 것이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초심을 잃지 않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국민의 뜻이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의 탈당 이후 힘들고 외로운 여정을 갈 것이며,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귀국에 앞서 국민만 보는 정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페이스북에 밝힌 내용의 연장선상이다.

안 전 의원의 탈당은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 2014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기도 했다. 당시 안 전 의원은 탈당선언문을 통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길을 나서려고 한다”고 했다. 배수진성 의중이 묻어난 말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탈당은 정치인 자신에 대한 극약처방인만큼 절실한 메시지가 뒤따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탈당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왜 그런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지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벼랑끝에 섰다는 심경을 노출하고 그 메시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에게 호소하는 형식의 멘트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안 전 의원과 대척점에서 선 손학규 대표 역시 처절한 탈당의 변을 내놓은 바 있다. 손 대표는 지난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잠룡 빅3로 불렸지만, 좀 더 큰 정치를 한다며 둥지를 깨고 나왔다. 손 대표는 당시 탈당의 변을 통해 “낡은 정치를 깨고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더 어려운 길을 택하겠다”고 했다. 따뜻한 둥지를 떠나 시베리아행도 마다 않겠다는 절박한 심경이 담겼다는 말이 그때 나왔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이 29일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

‘탈당의 변’ 하면 떠오르는 이가 또 있다. 박지원 의원이다. 지난 2016년 박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분열된 야권을 통합하겠다는 게 그 기치였다. 그는 “나그네의 절박한 심정으로 야권 통합의 대장정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나그네로서의 고통의 여정을 마다않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탈당을 한 정치인이 그 절실한 심정에도 불구하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가 더 많았다. 성공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홍준표 전 의원은 이런 점에서 재밌는 말을 했다. 지난 2018년 3월께 안상수 창원시장과 이종혁 전 최고위원은 한국당을 탈당했다. 공천에 대한 반발이었다. 당시 홍 전 의원은 한국당 대표였다. 그는 “자기에게 공천을 주지 않는다고 당을 비난하고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성공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탈당해봤자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실제 탈당은 개인으로선 힘겨운 선택일 수 있으나, 성공확률이 적다. 정치인으로서는 목숨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탈당을 하면서 나오는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극단적인 결심’을 내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김상현 전 의원은 지난 2000년 16대 총선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결별을 선언했고, 민주당 공천에 실패했다. 그는 탈당을 하면서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국회에 입성하겠다”고 했다. 그리곤 2002년 재보선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당시의 ‘물구나무를 서서라도…’라는 말은 역대 최고로 회자된 탈당의 변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탈당은 신당창당으로 곧장 연결되기도 한다. 이번에 안 전 의원의 탈당이 신당창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강한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87년 통일민주당을 탈당했고,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바 있다. 앞서 한나라당의 수장이었던 이회창 전 총재는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아예 무소속으로 대선출마를 하기도 했다. 다만 이 모두의 경우 성공을 하지 못했고, 실패의 아픔을 겪었다. 그 실패를 딛고 나중엔 다시 성공을 열매를 맛본 경우도 있었지만, 당장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정치사를 감안할때 안 전 의원의 바른미래당 탈당과 신당창당 움직임이 매우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돌아온 안철수. 그의 탈당의 배수진은 과연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실패의 아픔을 던져줄 것인가. 안철수는 뭔가 다를까, 아니면 역시 별다를게 없을까. 그 답을 확인하는 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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